잠깐 휴학의 계기로 돌아가 봤다.
나를 과장하고 싶지도 않고 보통의 존재로서 나는 군 제대 복학 후 나름 열정적인 삶을 보냈다.
학기 도중엔 콘텐츠진흥원 기자단으로서 경기도와 부산 타지를 오가며 취재기사를 썼었고 문화와 도시재생과 관련하여 대전과 천안을 왔다 갔다 하며 문화기획 프로젝트도 시도해봤다. 방학이 시작되면 아르떼 아카데미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문화와 예술 그리고 교육에 대해 알아갔다. 문화재단을 통한 연수에서는 기획서도 처음으로 작성해 봤던 것 같다. 축제에 관심을 가졌을 때, 기획자가 되고자 꿈꿨을 때는 프린지와 정동진영화제라는 독립예술축제를 하면서 나의 한계를 불태우기도 했고 그 주변의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간다는 재미(다른 분야, 낯선 사람과 가까워진다는 흥분이 내게 존재했었던 것 같다.
2학년의 기말기고사가 끝나고는 쉴 틈 없이 편입 준비를 했다. 한 달 동안 서류를 준비하고 면접 준비와 필기시험을 준비했다. 예술경영의 큰 꿈을 가지고 나는 거침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피할 수 없는, 아주 현실적인 경제적 난관에 봉착했다. 등록금의 독촉 전화와 합격증 앞에서 나는 '포기'라는 선택을 했다.
3학년에 올라와서는 예술을 좋아하는, 엄밀히 말하자면 미술과 전시를 좋아하는 비예술 전공생들의 프로젝트라고 할까나. 학과 동아리를 운영하며 전시도 보러 다니고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기획자와 대화도 해보며 주제를 설정하고 예산을 분배하는 일. 정말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의 완벽주의 때문에 나는 동아리장을 하면서 학교 일 외 회의에 신경 써야 했고 전시회를 준비한다는 건 도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디자인 업체와도 합의를 보며 마지막 결과물을 제작하고 각자의 작품도 준비해야 했기에 이 또한 잊을 수 없는 힘들며 뿌듯한 연말의 기억을 안고있다.
3학년이 끝나고 그 해 겨울에는 영화잡지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영화평론 강사님들과 컨택을 했고 수업을 진행했다. 아쉽게도 잡지를 만들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공부가 부족한 상황에서 큰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닌, 대외활동의 일부였지만 그것들로부터 삶의 일부를 느꼈고 관심 있는 분야를 알아간다는 행복, 흥미를 발전시켜나가는 주체적인 순간들이 너무 좋았다. 이 모든 것이 정말 한치의 의도성도 없을뿐더러 정말 나에게 진실만이 존재하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병들고 있는 걸 알아챘고 휴학을 했다. 원래 목이 많이 좋진 않지만 등까지 많이 굳음과 동시에 통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외로운 학교생활과 나의 열정 속에서 인간관계들을 거치면서 심적으로 말하기 힘든, 감춰둔 고통들이 내가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죽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번 아웃. 마치 몸속이 펑 하고 터진 기분이었다. 그 후에는 그런 거침없는, 멈춤 없는 삶을 청산하고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리고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누군가에게는 슬럼프, 하지만 나는 권태와 무기력의 차원으로 조금 이동한 것 같리도 하다.
누군가에겐 필요한 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라는 건 너무 복잡하고 이해관계는 골치 아플 때가 많다.
최대한 소속감에 물들지 않고 나 자신의 삶을 영위해 왔지만 필요한 고통들도 찾아왔다.
인간성 상실과 윤리적 차원에서 내가 후퇴하고 있다고도 느끼며 쉼표라는 나 자신만의 방점을 찍었다.
올해는 단지 복학 생각, 학교 생각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어떤 실수라기보다 너무 많은 열정 또는 욕심은 화를 부른다. 마치 제로섬 게임처럼 뭔가를 얻으면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그런 상태의 연속이니까.
해볼 걸 다 해봤으니 느낀 것들도 많았으니 이제는 큰 목표들, 예를 들어 건강이라던지 유학이라던지 등등의 나름 거시적인 목표를 염두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1년 동안 다시 공부를 하며 무미건조한 삶이 계속되겠지만 주기라는 건 역동적일 때가 있으니 올해가 기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