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이란 인간이 얼마나 기다리는 것에 취약한지 알 수 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머리를 하고 있는 미용사 누나에게 오늘은 헹구고 그냥 가야겠다며 파마를 하시던 아주머니는 머리를 자르는 누나와 머리를 자르고 있는 나에게 일종의 불쾌감까지는 아니지만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물론 이 사람 저 사람 머리를 봐줘야 하는 건 그 미용실에서 초래한 상황이지만 그냥 나는 왜 꼭 이런 상황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참 그랬다. 나는 미용실을 갈 때 공부할 책을 가져가거나 독서할 서적을 가져가곤 한다. 멍하니 기다리기도 싫을뿐더러 나에게는 일종의 미용사분을 위한 배려였다.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에 다들 무언의 찬성을 가지고 그것이 인간의 본능으로 우리에게 촉박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재학의 기간 동안은 접근성이 높은 학교 근처의 미용실을 주로 갔었다. 거기서 만난 지훈쌤은 정말 자상한 분이셨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지훈쌤은 나의 번호를 가져갔다 그리곤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따인 적인 없는 번호를 미용실 담당쌤에게 따이다니 지금 생각하니 좀 새롭고 기분이 좋다. 무튼 지훈쌤은 나의 머리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리고 나의 버릇이지만 나는 항상 미용실을 갈 때마다 옆짱구에 두꺼운 동양 모발로 옆이 붕 떠버리는 것을 쌤에게 하소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지훈쌤은 친형처럼 웃으면 잘 들어주었다. 그리곤 멋진 가위와 서양식의 이발기를 가지고 나의 머리를 자른 뒤 한올 한올 옆의 머리를 약으로 눌러주시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매일 똑같은 날과 시간에 지훈쌤이 보이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여쭤보니 쌤이 결혼을 해서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그 감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머리를 자르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었지만 생각해보니 쌤이 여자 친구와 만난 지 벌써 10년이 다돼간다는 것도 들었는데.. 결혼을 준비하시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나는 쌤과 이별할 시간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지훈쌤은 집도 서울이어서 금방 떠날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용실에서 아이를 데리고 는 부모님들을 보면 참 좋다. 나에겐 아버지와 손을 잡고 동네 이발소에 가서 달콤한 요구르트를 마신 뒤 같이 이발을 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제는 그건 추억 속의 한 장이다.
커버린 몸뚱이로 미용실을 가면 정말 잘생기지 않은 이상 미용사 분들에게 호감을 줄 순 없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뽀얀 얼굴과 부드러운 모발로 미용사 분들의 이쁨을 독차지한다. 부럽다 녀석들. 사실 나도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나도 저렇게 피부가 부드럽고 뽀얀 때가 있었지. 떨어지는 모발에 한 줄기 슬픔을 노여워할 필요가 없던 때가 있긴 했지.
우연히 동영상을 보다가 미용영상을 보게되었다. 해외의 이발사들이었는데 스킬이 정말 대단했다. 우리나라는 시내 한복판에만 나가도 10명중 7명은 똑같은 스타일을 하고있다. 그런데 외국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머리를 위해 고슴도치를 본딴 염색도 하고 스펀지밥같은 머리모양을 하는 영상이었다. 보편적인 것, 비슷한 것, 기본에 걸맞는 게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이 딱 거기서 끝나버린다는 것을. 어느날 글을 쓰고 있는데 명견만리라는 해외 투자자가 나와 한국을 분석하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거기서 그분은 한국이 안정성을 위주로 하다보니 변혁을 이루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떤 우리 주변의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힘들거니와 바꿀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도 들렸다. 그 단초로서 우리는 공무원 경쟁률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그리고 그 퍼센트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단순한 미용영상의 댓글에도 여러 미용사와 일반인들의 의견을 보면 그들도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역시 외국.. 우리나라는 두상 자체가 힘든 점도 있지만 어떤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나 편한 머리 위주로 하려한다 등등..
현대의 미는 어쩌면 자신을 구속하는, 속박하는 일일 수도 있다. 머리가 뜨면 약처리를 해서 눌러야 하고 풍성해 보이는 머리를 위해서 뜨거운 기계로 모발을 지지고 꺾고, 때론 흙탕물과 같은 노란 파란 빨간 약에 머리를 담구기도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페티쉬일지도 모른다. 좀 더 조이고 지지며 그 페티쉬를 나도 모르게 자신을 옭아매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