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사가 나를 면접에 부른 이유
이 회사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중견기업이었다. 채용 공고에 안내되어있는 주요 업무 내용과 우대 사항을 보니 나의 경력과 약간 겹치기는 하지만 적임자처럼 딱 들어맞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사 지원을 했는데 막상 면접 일정이 잡히고나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어서 부랴부랴 열심히 예상 질문을 만들고 답변 정리를 했었다.
보통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면접 내용이 어렵고 복잡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과제나 PT, 혹은 특정 툴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테스트하는 과정들이 머릿 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그런 회사도 있을 수 있지만 이 곳의 경우 비교적 단순했다. 별도의 배경 지식을 확인하는 절차도, 새로운 기획 요구도 없었다. 내가 제출한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가 면접에 필요한 재료의 전부였다.
면접은 1:1로 진행되었다. 면접관은 40대 후반 쯤의 팀장이었고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자세히 읽어 본 듯 했다. 사업 분야가 달라서였는지 그는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내용부터 정확하게 알고싶어했다. 이 서비스는 어떤 맥락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떤 기능과 화면으로 이루어졌는지, 당시 팀 구성은 어땠는지 등등. 그는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말로 정리한 뒤 잘 모르거나 애매한 부분은 다시 물어보고 확인했다. 그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그 다음에 본격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평범한 예상 질문부터 업무와 관련된 꼬리 질문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주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대하여 개인적인 대응 방식을 묻는 질문들까지 다양한 카테고리에 걸쳐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지만 압박감은 없었다. 면접자를 파헤치는 심문이라기보다 이 사람이 누구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방식으로 일 해왔던 사람인지 파악하려는 대화에 가까웠다. 면접관은 중간중간 메모를 했고, 공감이 가는 답변에는 가볍게 호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심층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면접이 끝나갈 때쯤 면접관은 나에게 궁금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줄곧 생각하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
"저에게 면접 기회를 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나는 이 회사의 사업 분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고 채용 공고에서 우대하는 업무 경험도 일부 부족한 면이 있었다. 내가 입사를 하게 된다면 해당 분야의 배경 지식을 새로 익혀가며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딱히 학습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서류만 보고 지원자를 판단해야했던 회사의 입장에서 나를 면접에 부른 이유가 궁금했다. 면접관의 답변은 요약하면 이러했다.
"제 생각에는 경력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일하면서 배워가고 적응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면접을 봐도 괜찮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가진 역량보다는 팀원이 된 이후의 '성장 가능성'을 보기 위해 면접에 부르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었다. 면접이 마무리되자 면접관은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로비에서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아마도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게 아닐까 짐작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면접에 임한만큼, 면접관 또한 자신만의 기준으로 이 채용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러한 채용 기준이나 절차가 정답이라는 뜻으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정해진 방식이란게 어디있을까. 다만 이 면접이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았던 이유는 '애매한데 일단 부르고 보자'는 찔러보기 식 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면접관이 면접자만큼이나 신경써서 질의하려했던 모습이 인상깊었고 특히 포트폴리오를 대충 넘겨보는 정도가 아니라 자세히 읽고 질문하며 면접자를 느낌으로 대충 파악하지 않으려했던 모습이 솔직히 말하면 감사할 정도였다. 물론 이 과정이 고압적이지 않고 커피챗처럼 자연스러운 소통으로 이루어졌던 분위기도 한 몫하였다.
며칠 뒤 탈락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는 결과 안내와 함께 면접 과정에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묻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형식적인 문장일 수 있겠으나 읽는 입장에서는 한 명의 지원자로서 충분히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꼭 합격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했던 면접인만큼 슬프기는 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 면접을 위해 소진했던 시간과 비용이 아무렇지도 않게 남용된 기분은 아니었다.
지금도 일상에서 우연히 그 회사의 제품이나 광고를 마주칠 때면 그 날의 면접이 떠오른다. 인연은 닿지 않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매너가 있었고 의외로 겉치레도 없던 회사. 누군가의 가능성에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 했던 그 면접관은 언젠가 내가 유리한 위치에서 타인을 마주하게 될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예의를 상기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