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피드백

그때 그 면접관이 던진 돌직구

by 지원



이번 면접 경험담은 사실 쓸까 말까 고민했다. 혼자만 묻어두고 있던 부끄러운 기억을 털어놓는 글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원을 하기 전부터 약간 머뭇거렸었다. 내가 잘 아는 서비스를 운영하 있었고 업계 인지도도 어느 정도 있는 곳이었지만 출퇴근 거리가 문제였다. 한 시간 반 동안 두 번의 지하철 환승을 해야 하는 위치. '찬밥 더운밥 가릴 때냐' 싶겠지만 직장인이면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통근 시간이 길면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모든 일상에 큰 영향이 간다는 사실을. 그래도 어쨌든 합격이나 하고 고민하자는 생각에 지원을 하였다.


당시 나는 면접 준비의 방향에 대해서 한참 혼돈을 느끼고 있던 시기였다. 이전까지는 면접 기회가 생기면 해당 회사의 서비스를 검색해서 장단점을 분석하고 개선안을 몇 가지 생각해 두고 갔었다.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접근성에 한계가 있는 경우도 있고 단기간에 실무진의 마음을 울릴 만큼 심도 있는 통찰과 분석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면접을 위해 내가 어떤 노력과 성의를 기울였는지 보여줄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면접장에 가면 의외로 그렇게까지 자사 서비스에 대해 자세한 질문을 하는 경우 없었다. 연이은 면접 탈락에 지쳐있던 나는 '괜히 기운만 빼고 있나?'싶어 졌다. 쩌면 면접이란 나의 노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치 럭키드로우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조금 나 자신과 타협을 하고 싶어졌다. 기업에 대한 조사를 거의 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장에 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경력 기술서에 나와있는 '나의 경험'과 관련된 내용정도만 물어보겠지 싶은 마음에. 길게 변명했지만 한마디로 적당히 요행을 바던 것이다.


면접 장소에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팀장급 남성과 실무자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면접을 주도한 팀장은 개발자였는데 약간 심드렁한 표정으로 툭툭 농담을 던지는 스타일이었다. 면접을 보면서도 경직된 분위기를 풀려는 건지 원래 성격인지 모를 잔잔한 농담들을 몇 번 던곤 했다. 면접이 한참 진행되던 도중 면접관이 물었다.


"혹시 저희 회사 서비스 써보신 거 있어요? 아무거나."


아, 큰일 났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학창 시절에 시험공부를 하면서 '설마 이건 안 나오겠지?'하고 건너뛰었던 부분을 시험장에서 딱 마주친 기분이었다. 이 자리에 오면서 어떠한 긴장도 고민도 하지 않고 앉아있던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지만 아는 선에서 최대한 포장해서 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 최근은 아니지만 XX서비스를 사용해 본 적 있습니다."

"그래요? 사용하면서 이런 건 개선했으면 좋겠다 싶었던 부분이 있었으면 얘기해 보세요."



지금도 내가 정확히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면접관의 마음에 들만한 좋은 답변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내 답변을 들은 면접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고개만 몇 번 끄덕이다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아마도 나의 이력서가 띄워져 있었을) 노트북 화면을 빤히 들여다보던 면접관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특유의 무심한 어조로 짐짓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실례가 되려나."


그는 옆자리의 실무자를 흘깃 보며 '괜찮겠지? 이런 피드백은 도움 될 수도 있으니까...'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치 나에게도 들으라는 듯이.


"문서도 어느 정도 잘 쓰시는 것 같고 기획자로서 마인드도 괜찮은데... 생각한 걸 말로 정리하는 게 부족하신 것 같아요."


그 순간 '들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스스로도 알고 있다. 분명히 나는 말보다는 글로 소통할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업무에 있어서도 미팅이나 회의 같은 일정보다도 사용자 시나리오나 화면 설계안같이 혼자 자리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산출물을 작성하는 업무에 더 재미를 느끼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좋은 일, 싫은 일을 구분하려 한 적은 없었다. 발표든 회의든 내가 해야 할 일이면 피하지 않았고 부족한 부분은 미리 준비하고 부딪혀가면서 보완해 나갔다. 훌륭한 달변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남들만큼은 하자는 게 내 목표였다.


렇게 성실하게 가려두었던 취약점이었는데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나간 면접 자리에서 간파당한 것이다. 이전 질문의 여파로 위축되어 있던 나에게는 꽤나 뼈아픈 직구였다. 딱히 변명할 말이 없었다. "아, 네. 저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회사 건물을 나오면서 영 씁쓸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얄팍한 요행을 바랐던 태도가 부끄럽기도 했고 평소대로라면 당황하지 않았을 질문에 말려버린 나 자신이 아쉬웠다. 그동안은 탈락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인연이 아니었나 보지', '회사가 나를 제대로 몰라봤네!' 라며 위안을 삼곤 했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할 말이 없었다. 면접관의 눈에는 딱 준비한 만큼 내 모습이 투명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했을 뿐이다.


며칠 뒤에 예상대로 탈락 메일을 받았다. 물론 진짜 이유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하지 않은 면접은 아쉬운 미련만 남기고 끝나버렸다. 그래도 면접 자리에서 불쾌하지 않게 솔직한 피드백을 대면으로 받은 경험은 나에게 의미 있는 교훈으로 남았다. 모든 일은 내가 준비한 만큼 남들 눈에 거울처럼 정직하게 비친다는 것. 이 날의 면접 이후로 한 번씩 내가 하는 일들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마음가짐이 나태해질 때면 이때 얻은 교훈을 떠올리면서 흔들리는 생각을 다잡으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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