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어른

뉴질랜드 첫 출장 이야기

by Self Belief
그래서 밤마다, 나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대기 중 온실가스를 연구한다.

많은 국가들이 이산화탄소의 배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뉴질랜드의 경우 이산화탄소의 배출과 흡수 전체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아름다운 숲을 간직한 고대의 땅이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흡수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 연구 중 일부로 2주 동안 숲에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뉴질랜드에서의 첫 출장이었다.

마오리 부족이 대대로 지켜온 숲에 들어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시료를 채취하고, 산장에 돌아와 쉬곤 했다.

어느 한 날 비가 너무나 쏟아져 실험이 취소가 됐다. 한낮에 산장에 갇혀할 일이 없었는데, 산장 뒷마당 귀퉁이에 바다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는 표지판을 봤다. 나는 당장 우비를 챙겨 입고 바다 산책로를 다녀오겠다고 했다.


다들 ‘응 그래 잘 다녀와!’ 하고 손을 흔들어 줬다. 그 좁은 오솔길을 비집고 들어서기 시작하자 땅은 습지와 같이 질퍽하고 미끄러웠고, 가팔랐으며, 비가 쏟아져 너무 어두웠다. 갑자기 여기서 사고가 나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한 10분을 호기롭게 걷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되돌아왔다.


‘너무 무서워서 맑은 날 가야 할 거 같아요.’ 하고 산장으로 들어서자 다들 뛸 듯이 기뻐하면서 ‘다시 돌아와서 너무 기뻐요! 사실 너무 걱정했었어요.’ 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의아했다.

하루 종일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나는 결국 저녁을 먹으며 물어봤다. ‘아니, 그렇게 걱정이 됐다면 가지 말라고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고 묻자 그들이 오히려 ‘그런데 박사님은 어른 아니에요?’ 하고 되물었다.

‘네?’ ‘만일 제 딸이 간다고 했다면 저는 걱정되니 맑은 날 같이 가자고 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박사님은 어른인데, 어떻게 제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어요?’




그렇다. 나는 어른이다.


위험한지 아닌지, 오늘이 걷기 좋은 날인지 아닌지, 나는 내가 판단할 수 있다. 그들은 내 결정을 존중했던 것이다. 그러나 걱정이 됐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응급번호를 찾아 놓고 있었다고 했다. 한편으론, 내가 떠나기 전 그들의 의견을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누구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아 누구도 얘기해 줄 수 없었다.


만일, 한국이라면 정 없다고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료가 그런 위험지역으로 가는 꼴을 절대 못 본다. 만일 뉴질랜드처럼 내 의견을 존중해 나를 내버려 뒀다가 사고라도 나는 날엔 난리가 난다. 평생에 걸쳐 원망을 들었을 것이다. ‘말 좀 해주지. 입뒀다 뭐 하냐!’


생각해 보니 한국 사람들은 어른이 상대적으로 좀 늦게 된다.


우리는 자라면서 부모님께 순종하는 법을 먼저 배우고, 부모가 시키는 일을 한다. K장녀나 K장남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렇게 자란 자녀는 사회에 나가서도 어른의 말씀을 잘 듣는 어른이 된다. 사회에서 조차도 부모와 같은 더 큰 어른이 있다. 승진을 해도 해도 그 위에 반드시 어른이 있다. 그래서 그 어른이 결정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룰이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되는 순간이 꽤나 늦게 오고, 또 한 번 어른이 되면 때론 후배들을 지나치게 어리게 치부하며, 지나칠 정도로 훈수를 두기도 한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약간 다르다.


고등학생이면 벌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기 용돈을 벌고, 대학생이면 무조건 독립해서 나가 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만난 연인과 대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다 결혼하고 (혹은 그냥 결혼하지 않고 그냥 살고) 아이를 낳는다. 부모가 아이를 전혀 도와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월세 한번, 대학교 1학년 학비 한번 정도를 부담해 주는 것을 빼면 거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22살만 돼도 굉장히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자기 스스로 무언갈 결정하는 것이 쉽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시간이 지나고 몸이 자라나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내 생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위해 결정하고, 그 결정을 따라 행동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모든 과정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어른의 연습이 너무 부족하다.

부모들은 내 자식이 고생하지 않길 바란다지만, 결국 그저 말 잘 듣는 애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특별한 아이들을 지극히 평범한 어른으로 기어코 만들어낸다. 게다가 그렇게 자라난 지극히 평범한 어른들은 사실 아직도 어른이 아니다.


뉴질랜드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This is my decision.’.

‘내 결정이야, 상관 마.’라는 뜻보다는 ‘내 결정이야, 후회 없어. 누구도 원망 안 해.’의 뜻에 가깝다. 누가 좋은 것을 권유하더라도, 자신의 뜻에 반하면 저 말을 한다. 책임은 오로지 본인에게 있음으로.


뉴질랜드에서의 나의 모습은 때론 어린애들보다도 못해 매일매일 내가 너무 싫어지고 있다.

어쩔 땐 어른이 아직도 아닌데 나이만 이렇게 먹었다는 게 소름 끼친다.


그래서 밤마다, 나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렇게 내 생각을 적어 나가면서 나의 세상을 구축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계속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인생을 살다가 늙어버린 가짜 어른으로 끝나게 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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