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수영장의 깊이
나도 나를 인내해 주면 되는 것이다.
물의 형상이 좋았다.
정확하게는 형상이 없는 형상이 좋았다. 세모 그릇에 담기면 세모가 되고, 네모 그릇에 담기면 네모가 되었다. 물에 몸을 담그면 그 물 알갱이 한 알 한 알이 손가락 발가락 사이사이에 빈틈없이 꽉 차게 스며들었다. 그때마다 나의 결핍이 비로소 채워지는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가 몸을 휙 돌리면 물살은 나보다는 약간 천천히 휘돌며 나를 감싸 돌았다. 그것이 안정감을 줬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좋았다.
여름이면 친구와 제주 바닷가에서 스노클링을 했다.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강낭콩이 불듯이 손가락들이 불어 쪼글쪼글 주름이 질 때까지 그렇게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 여름을 보냈다. 바다 밑으로 들어가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빛줄기, 고요한 적막이 햇빛과 함께 내려앉았다.
나는 뉴질랜드로 이주할 때, 제주 바닷가의 스노클링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웰링턴은 남극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었고, 물의 온도는 여름철에도 14-17°C 밖에 되지 않았다. 뉴질랜드에 온 첫 해에 그렇게 용감하게 여름철 바다 수영을 갔다가 감기에 크게 걸려서 고생을 했다.
반면 뉴질랜드 사람들은 365일 사계절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내 옆 사무실의 S는 매일 아침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출근을 한다. 왜 매일 바다에서 수영을 하세요? 하고 물으면 그냥요. 좋아서요. 하고 대답했다. 물이 차갑진 않나요? 하고 물으면, 차가운 대로 괜찮아요. 했다. 말만 들어도 온몸이 시렸다.
그래서 나는,
동네 수영장에 다니기로 했다. 이게 나의 최선이었다.
길이 33.5 m, 깊이 3 m, 온도는 28°C.
처음 수영장에 가서 돈을 냈는데도, 수영장에 대한 아무 소개가 없길래 나는 ‘어떻게 이용하면 되나요?’ 하고 물었다. ‘네?’ ‘그런 거 있잖아요, 뭐 신발 넣는 락커라던가, 짐을 보관하는 그런 거요.’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여자표시 보이시죠? 거길로 들어가셔서 옷 갈아입고 수영하면 돼요.’
막상 수영장에 들어가니, 그 사람이 내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를 법도 했다. 왜냐하면 뉴질랜드는 락커 개념이 없었다. 마치 운동장 한가운데 러닝트랙이 있고, 그 주변을 벤치가 둥글게 감싸 듯이, 그렇게 한가운데 수영장이 있었고, 그 주변에 벤치가 있었다. 짐은 그냥 그 벤치 위에 올려놓으면 그만이었다. 만일 귀중품이 있다면 따로 카운터에 지갑이나 핸드폰 정도만 맡길 수 있었다. 그 사람 말 그대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하면 되는 거였다.
사실, 이러한 뻘쭘함은 문제도 아니었다. 다른 문제가 있었다.
나는 3m의 깊이에서는 수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바다 수영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까지 깊은 곳은 아니었다. 수영장의 파란 바닥은 굴곡 없이 그 깊이를 극대화시켰다. 수영하다가 기운이 빠져 물에 잠식될 까봐 혹은 다리에 갑자기 쥐가 나서 물에서 허우적거릴까 봐 공포심에 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 계셨던 여성 분이 내게 물었다.
‘수영 처음 하세요?’ ‘아뇨, 그건 아닌데, 이 깊이에서 하는 건 처음인 거 같아요.’
‘아, 그럼 할 수 있는 데까지만 왔다 갔다 해보세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했어요. 내가 봐줄게요. 못해도 괜찮아요’
사실 생각해 보면 처음 수영을 배울 땐 겁이 없었다. 삶에 무엇 하나 잃어본 적이 없는 7살이 겁을 내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다.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시작하면 한 레인을 끝까지 갔고, 발로 벽을 터치해서 턴을 할 때, 그리고 반동으로 인해 더욱 힘차게 물살을 갈라 앞으로 나갈 때 그 포근한 느낌. 그렇게 몇 번을 왕복해도 지치지 않았었다.
모든 것에는 처음이 있다. 두려움이 없었던 많은 처음도 있었다. 그러나 처음은 그렇게 다정하지 않았다. 실수 연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만의 실수와 사건 사고에 더 이상 국한되지 않고,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그 무렵에는 ‘처음은 다 그래. 못해도 괜찮아.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라고 하는 다정한 사람들 보단 ‘세상에 처음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니. 일단 해.’라고 하는 단호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됐다. 그런 경험은 호기로움 보다는 두려움을 더 수반했다. 욕도 먹고 뒷말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하루하루가 무너졌다.
그럼에도 그들이 나를 욕했건 위로했건, 그네들의 인내로 나의 두려움과 멍청함을 뒤로하고 처음을 두 번째로 세 번째로 만들어 나갔다. 남들도 나를 참아주는데, 왜 내가 나를 참아주지 못하는가? 그러니까 나도 나를 참아주고 인내해 주면 된다.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하자.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중간까지만 갔다가 돌아왔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다. 이게 뭐라고, 비장하리만치 나는 나를 다독였다. 그리곤 낯선 사람의 응원에 힘입어 레인의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 여성분이 박수를 치며 칭찬해 줬다. 팔과 다리에 힘이 풀리고 턱이 덜덜 떨렸다. 창피했냐고? 그걸 따질 정신도 없었다.
그렇게, 그날 이후, 지난 2년 동안 뉴질랜드 꼬맹이들과 레인 싸움을 벌이며, 턱이 덜덜 떨리고, 팔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수영을 했다. 그리고는 끝내 3 m 깊이 수영장의 33.5 m 거리를 왕복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3m 수영장에서 수영하듯, 뉴질랜드에서 하루하루 수많은 쪽팔림과 실패, 방황을 견디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 스스로를 인내하며, 모든 처음을 반복하는 중이다. 나이가 많아도, 누구에게든 오늘 하루가 인생의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