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감상, 일상에 이상한 경험 끼워넣기
세계적인 연주자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클래식의 대중화" 보다는 "대중의 클래식화"가 되기를 바란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따. 클래식음악이 대중화되어 이리저리 왜곡되고 변질 된다면 클래식음악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의 클래식음악의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정명훈 지휘자,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 백건우 피아니스트와 같은 1세대 음악가들이 닦아놓은 덕분에 동네 피아노학원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음악가들이 양성되었다. 최근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연속 우승을 차지한 한국, 전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내한 공연을 했다하면 매진 행렬을 일으키는 임윤찬 피아니스트도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키운 천재 아니던가.
세계적인 콩쿠르에서의 수상 소식이 최근 20년 간 갑작스럽게 물밀듯이 들려오던 데에 반해, 일본은 클래식 음악 역사가 한국보다 100년이나 앞선다고 한다. 특히 1970~80년대 일본 경제가 절정에 달했을 때, 클래식 음악 수용과 함께 악기 수집도 공격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몇 대 없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일본에는 알려진 것만 해도 120여 대에 이른다고 하니, 이들의 선제적 투자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실감하게 된다. 아울러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별도의 레슨 없이도 공연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로 음악가들이 많다는 건, 클래식 공연 문화가 이미 일상 속에 뿌리내렸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크고 작은 공연이 더 자주 열리길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리한 컬처의 주최로 북촌의 고택에서 베토벤 프로그램을 재즈와 해금의 조합으로 새롭게 해석한 공연을 보았다. 원래는 원곡 연주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날만큼은 완전히 다른 해석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최근 국내에서도 전통적인 공연장뿐만 아니라 소규모 갤러리나 카페 등 다양한 장소에서 클래식 공연이 열리고, 이를 즐기는 관객층 역시 점차 넓어지고 있다. 고상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던 클래식이 이제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아마추어 연주자와 프로 연주자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공연이 열린 서촌 역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로 가득했고, 그날의 새롭고 힙한 무대를 접하니 꼭 한 번 더 찾고 싶어졌다.
베토벤과 해금이 만나 완전히 낯선 소리를 빚어내는 풍경은, 클래식과 국악 모두를 새롭게 들리게 만든다. 곳곳에 다양한 공연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으며 이러한 신선한 음악적 시도는 우리의 감상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데려간다. 익숙한 선율에 전통의 음색이 어우러지면, 우리는 어느새 ‘낯선 감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음과 음이 뒤섞이는 경험을 넘어, 우리의 음악적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기쁨이다. 또, 귀로만 듣던 소리가 마음 한구석까지 스며들어 ‘예상치 못한 감동’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 작은 충격이 어제와 별다를 것 없던 일상의 맥락을 살짝 비틀어, 삶에 새로운 탄력을 부여한다.
낯선 감상이 쌓일수록 우리는 조금씩 더 깊은 호흡으로 일상을 바라보게 되고, 이전에는 지나쳤던 소소한 순간에도 마음이 가 닿게 된다. 그렇게 변주된 하루하루는, 익숙함 속에서도 늘 새로운 리듬을 찾을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나는 어떤 새로운 감상을 일상에 들여와 내 고정관념을 흔들어볼 수 있을까?”
“낯선 감동을 마주했을 때 그 느낌을 내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시킬까?”
“지금 내게 익숙한 것들을 살짝 바꿔볼 여지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무엇보다도 이 모든 변화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다양한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문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클래식 공연장뿐 아니라 크고 작은 무대에서 실험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음악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그 속에서 클래식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는 많은 이들이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베토벤 운명, 해금연주가 천지윤과 피아니스트 조윤성
https://youtu.be/SBuYHewQs-M?si=K2CejzzVVKlypWAw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 클래식 고택 북촌 (건축학 개론 촬영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 6길 13-2, https://naver.me/Gsjhoh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