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시간을 달리고 싶다.

내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지?

by 어른돌

그날 꿈은 최근 꿈 중에 비교적 생생한 편이었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있던 중학교 동창 두 명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내가 왜 교복을 입었느냐고 묻자 우리 18살이란다. 무슨 헛소리냐고 반문하는 순간 나를 보니 나 역시 교복을 입고 있었다. 기나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상쾌한 느낌, 물밀듯이 밀려오는 안도감. 꿈속이었지만 난 내 미소를 봤다. 그건 아마 내 앞에 수많은 길이 있고, 앞으로 그 길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희망의 미소였으리라. 물론 모든 것을 알고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또다시 이런 꿈을 꾸지 않으라는 보장은 없지만.

돌아가고 싶은, 생각해내고 싶은 순간이 쉽사리 기억에 나지 않을 때, 그 기억의 파편들이 어두운 상자 안에 갇혀 아무리 열어보려고 해도 열리지 않을 때, 죽어버린 기억이 되는 순간 가슴은 턱 하니 막히게 된다. '사진'이라는 놈은 그 답답한 것을 해소해주기도 하고 때론 답답한 것을 촉발시키는 존재다. 적어도 내가 내 어린 시절을 어떤 모습으로 보냈는지는 그래픽으로 보여주지만, 그 순간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사진의 다음 순간 제스처는 무엇이었는지는 도통 기억해 낼 수 없으니까.

그래도 문득, 벤자민 버튼처럼 시간을 거꾸로 타고 싶어 졌다. 그래서 마련했다.




1987년 4월 5일. 오사카 텐노지 동물원에서 아버지와 나.
1989년 성진유치원 재학 당시 어딘가에서. 발에 물이 닿던 촉감이 기억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File0100.jpg 1990년 7월 1일. 어머니께 물어봤는데 남산인지 어딘지 잘 기억을 못하신다. 하지만 남산이겠지.
눈이 많이 왔던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난방도 안되는 추운 교실에서 한자 스터디를 마치고 모교 자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전교1등을 자랑하던 친구 성호와 함께. (2001년 1월)
가까운 이웃이었던 현수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1~2년에 한 번씩 꼭 가족 여행을 함께 가곤 했다. 사진은 고1 or 고2 무렵 어느 겨울. 동해바다에서 일출을 맞으며.
2002년 2월, 졸업 직전에 학교에서 단체로 갔던 아차산에서. 디지털사진 보급 직전이었지만 고모가 선물해주신 필름카메라를 하나 가지고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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