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스타벅스에서 일어날 일들

일주일간 매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by 어른돌


휴일 오전 스타벅스를 찾았다. 원래대로라면 테이크아웃을 해서 이동할 생각이었지만, 병원 예약 시간이 조금 남기도 했고 다리도 아파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평소와는 달리 매장 안이 썰렁하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이튿날부터 프랜차이즈 카페 좌석 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있어서일까, 중앙 테이블에 노트북 남학생 하나, 창가에 어머님 두 분, 그 옆에 한 커플, 구석에 영어 공부하는 학생들이 띄엄띄엄. 80평 가까운 홀에 손님은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덕분에 자체적인 거리두기가 가능했다.




커피는 일회용 잔에 받았다. 언제는 환경 때문에 매장 내에선 머그컵만 사용 가능하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부턴 코로나 때문인지 '매장용 머그' 혹은 '일회용 잔' 중 선택할 수 있게 규정이 바뀐 듯하다. 순간 웃음이 났다. 테이크아웃 잔에 받아 잠깐 앉았다 가는데도 규정이라며 끊임없이 눈치를 줬던 매장 직원들. 그들 역시 규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속(?)을 수행하는 수행원의 역할이었겠지만, 불과 반년 사이에 이렇게 바뀌다니 참.


생각해보면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빨갛다면 빨갛다고 다 같이 소리 질러야 하고, 파랗다면 파랗다고 열광하는 그런 집단주의적인 움직임에 난 늘 둔감했고 그러다 보니 매번 자신의 의견이 하나의 규칙 인양 강하게 표출하는 사람들에게 거북함을 느껴왔다. 인터넷 댓글, SNS의 피드, 단체 카톡방, 회사나 각종 모임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이 너무 강한, 그리고 그 의견에 대해 동조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관계의 지속'을 위해 대강 호응해주기도 벅찼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나의 이런 글을 보면서도 "왜 그렇게 생각하지?"라고 반문할 것임이 뻔하다. 그들의 성격 유형엔 늘 답이란 것이 존재하기에.


요즘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얘기만 나왔다 하면 '광화문 집회', '사랑 제일교회', '이태원 클럽', '신천지'라는 프레임과 연관시키기 바쁘다. 소규모 집단에 대한 비판은 더 큰 집단주의가 덮어버린다. 그 사이에서 이 사태의 본질은 점점 멀어져 가고 종교, 성 정체성, 정치색에 대한 부정적 이슈만 남는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지적은 수많은 사회적 갈등을 낳았다. 마스크를 쓰라는 버스기사를 폭행한 승객,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을 지적하는 시민과 상대방 사이의 난투극, 코로나에 걸렸다며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은 할아버지 등 듣기도 거북한 뉴스가 많다. 코와 입으로 전파되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사회를 이 지경으로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혹시 알고 보니 코로나가 눈으로 전파되는 것이었다면 다들 어떻게 될까?


이게 아니면 죽을 것처럼 덤벼들다가도 상황이 변하면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그런 사람들. 그들에게는 대체로 자신에 대한 합리화가 존재한다. 방금 전까지 본인이 했던 실수는 슬쩍 덮어버리고, 오히려 타인의 행동을 꾸짖으며 가르치려고 든다. 학생을 벗어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내 앞에 새로운 선생님이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다. 이쯤 되면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도 가르침과 본인의 행동이 불일치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일부터 일주일간 수도권엔 2.5단계 수준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다. 당장 다음 주부터 이런 뉴스들이 나올 것 같다. 일요일엔 <수도권, 생각보다 잘 지켜진 2.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겠지만 월요일 <카공족들의 개인 카페 점령, 점주들 울상>, 화요일 <식사 손님 9시에 나가라고 했다가.. 식당 주인 봉변>, 수요일 <술집 9시 이후 영업 막으니 한강 둔치에서 맥주 즐기는 시민들로 바글바글>, 목요일 <잠깐 앉은 거다. 나가시라... 고성과 폭언이 끊이질 않는 스타벅스>, 금요일엔 <편의점 노상 테이블, 불금 모임 장소로 등극>. 그리고 어떤 언론사의 기사냐에 따라 댓글의 뉘앙스가 결정되겠지.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다음 주는 눈과 귀를 다 닫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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