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몰랐으면 한다.

비판할 자격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by 어른돌


적당히 '몰랐으면' 한다.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갔는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휴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인스타에 올린 카페는 누구랑 갔는지, 누굴 팔로우하는지, 스마트폰엔 무슨 어플이 있는지, 어떤 사이트를 즐겨 찾고 있는지, 어디가 아픈지, 그리고 이런 글은 왜 쓰는지.


농경사회가 기반이었던 우리나라는 과거 이웃집 숟가락의 개수까지도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런 습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까. 삶의 활동무대는 작은 마을에서 넓고 깊은 디지털 세계로 변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남의 사소한 것들에 관심이 많다. 틈만 나면 인터넷 뉴스를 읽고 타인의 SNS를 관찰한다. 그 속에서 분노와 트집을 잡는 것은 아주 쉽게 이뤄지는, 일종의 루틴이다.


알고 모름이 적당하면 분노도 없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이놈의 분노는 나누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해명을 들을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 해명을 요구한다. 뭐 소위 본인들이 낸 '세금'과 관련되어 있는 공적인 것들은 그렇다 치자. 그렇게 '세금'을 들먹이며 본인의 '권리'에 대해 당당하게 밝히려는 사람들이,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간섭은 침해라고 왜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영원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입장, 까도 되는 대중으로 본인을 포장하면서 모든 진실을 알고자 한다. 사실상 아주 사소한 분야까지 그런 대중들의 시시콜콜한 간섭이 반영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걸그룹의 왕따 사건, 유명 뮤지션의 학력 논란에 진실을 요구하는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게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니, 참견의 유구한 역사도 깊다.


그런 분노는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다. 보통 타깃 대상의 초반 언행이나 행동 하나가 어긋나면, 그 후엔 전후관계를 따지지 않고 대중의 공격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부정 기사를 생산해내고, 네티즌들은 거기에 '소통'이란 가면을 쓰고 달려든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자신만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아주 착하게 잘 포장한다. (*사족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대개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해선 이기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다.) 오프라인에서만 존재하는 '국민 참여 재판 배심원'이 인터넷에도 수두룩하다. 댓글창에 저마다 형량을 내리는 꼴을 보면 난잡해서 볼 수가 없다.


적당히 몰랐으면 한다. 아니, 알아도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갔으면 한다. 누구를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등의 피해를 입힌 일이 아닌 이상, 그 진실이 당신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면 딱히 분노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본인이 준 상처는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본인이나 본인 가족들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집단주의에 심취해서 마녀사냥을 하다 보면, 어느새 누군가에 의해 그 마녀가 본인이 되어 있을지도. 아니 난 솔직히 그렇게 피해를 준 불특정 다수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짧은 여행은 끝이 났고 여운만 남았다. 모든 선택에는 선택 당사자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자기 내적인 이유가 아니라 타인에 의한 상처가 원인이 됐다면 참 씁쓸하다. 그거 하나는 확실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누구든 간에, 그 누군가의 삶을 평가할 자격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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