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으신 분 같아요.

웃기긴 하지만 우습진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by 어른돌

"얘기를 좀 나눠보니, 참 좋으신 분 같아요."

"무엇이요?"


촉촉한 허니브레드를 한 조각씩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이상하게 말이 술술 나왔다. 누가 보면 전문 프리젠터나 언변가라도 되는 줄 알겠다.


나는 모임이 많다고 했다. 대학생 때부터 많은 모임들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MBTI의 맨 앞은 늘 'E'가 아니라 'I'였다. 나서진 않지만 늘 항상 어딜 가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게 좋았다.


"많은 모임의 사람들이 절 편하게 생각했었어요. 체면 차리는 모습보다는 그냥 막 편안하고 가공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가 봐요. 망가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사람들에게 웃음 코드를 전달하고 사람들이 그걸로 웃어주면 좋죠. 개그맨도 그런 느낌으로 개그를 하는 걸까요? 아무튼 제가 어떤 행동을 하던 저로 인해 사람들이 웃으면 좋았어요."


내 말을 듣던 상대방이 한 마디 던졌다.


"그래서 참 좋으신 분 같아요. 상대방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웃기는 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웃음의 소재가 되시는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는 잘 못하거든요."


순간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젊은 개그우먼 추모 기사에서 봤던 댓글이 갑자기 떠올랐다.

'웃기긴 했지만 결코 우습진 않았던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땐 사람들이 나로 인해 안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학점, 취업, 결혼 등 소위 제도권이라고 포장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 많은 사람들도, 최소한 여기 있는 나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 멀쩡한(?) 나 자신을 깎아내리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나를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한 발짝 물러나게 됐다. 거기에 30대 후반이 되면서 '체면'이라는 것에 자신을 꽁꽁 감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 역시도 나를 가릴 수 있는 적당한 겉옷을 걸쳤다. 남들이 웃을 때 따라 웃고, 아닐 때는 그냥 맹숭맹숭하게 있었다. 직장 동료들과의 커피타임 땐 무표정이거나 고정된 미소였고, 오랜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냥 힐링되는 이야기들만 했다. 오히려 예전 나의 모습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편했다. 적당히 정제된 이후에 만난 지인들과, 너무 얕지도 깊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됐다. 가끔 예전 습관이 나와 망가질 때가 있지만, 그건 한 번으로 족했다. 적당한 거리가 있는 이들은, 그냥 한 번 호탕하게 웃고 말 뿐이었다.


"좋으신 분 같아요"


그냥 나의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았을 때 내 진심을 알아줘서 반가웠다. 아니 나보다 내 진심을 더 잘 알아챈 것 같아서, 뭐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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