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성동구 도선동 돈까스전원
우리는 인류 최초로 달에 족적을 남긴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을 기억합니다. 수천 년 동안 신화와 전설의 영역이었던 하늘의 달은 아폴로 11호와 닐 암스트롱의 위대한 도전으로 말미암아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 조종을 담당했으며, 두 번째로 달에 발을 디딘 <버즈 올드린>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세상은 <최선>보다는 <최초> 혹은 <최고>라는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식당을 선택하는 기로에서 이 메뉴 중에선 최고로 맛있는, 이 메뉴를 최초로 만든 이라는 타이틀에 좌지우지되는 걸 보면 <승자독식 구조>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모양입니다.
2020년 8월에 개업하여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은 왕십리 도선동의 <돈까스 전원>이라는 식당을 경험하며 떠올린 생각의 단편들입니다.
두툼한 일본식 돈카츠가 시장의 유행 아이템이 되며, 이제 웬만한 고메카츠는 명함을 내밀기 참 어려워졌습니다. 고급 돈육에 숙성 기술을 더하고, 최고의 튀김을 만들기 위한 빵가루를 만들려고 제빵까지 하는 레스토랑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심지어 기름에 튀긴 돈카츠를 오븐에 저온으로 구워내는 2차 조리 과정을 거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식당도 있습니다.
분명 그런 레스토랑에 비하면 이 집은 소박합니다. 청년 사장 홀로 음식 준비를 하고, 조리와 홀서빙, 정리까지 하다 보니 식당도 자그마합니다. 주문을 하면 15-20분은 족히 걸립니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제 입맛 기준으로만 평하자면
튀김옷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바삭하지도 않고
와사비도 생와사비를 갈아내지 않고 제품을 사용합니다.
속살이 촉촉하긴 하나 육즙이 흘러내릴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다 퇴사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인 식당을 차렸다는 청년 사장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 음식을 조리합니다.
속도가 생명인 현대 시대에 조리 시간이 과하게 길다 싶어 살펴보니 기름을 빼기 위해 6-8분을 돈카츠를 세워둡니다. 한 덩이라도 돈카츠를 튀기면 즉시 기름에 남은 잔여물들을 걷어냅니다.
전 그릇 속에 담긴 만개의 요리엔 만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최고는 아닐지라도 <진심>을 다해 만든 <최선>의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 추가잡설
1995년 픽사가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는 출연 인형 모두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넘쳐흐릅니다.
그중 우주특공대원 <버즈>의 명대사가 문득 떠오릅니다.
To Infinity, and Beyond!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현재의 일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일등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중요한 가치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토이스토리의 우주특공대원 버즈는 달에 두 번째로 족적을 남긴 <버즈 올드린>을 모델로 한 캐릭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