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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Apr 26. 2023

파로호가 숨겨놓은 오지마을, 비수구미 가는 길

비수구미 생태 트레킹 시작지점, 해오름휴게소의 도구리 산채비빔밥

인구 23천 명(2023년 1월 기준)의 특별할 것 없는 소도시, 화천의 핵심 자원은 물(水)이다.

(좌) 평화의 댐 (우) 화천 산천어축제 전경

보고 즐길 것 없는 도시, 화천을 떠들썩하게 만든 최대의 사건은 북한이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금강산댐을 건설하여 200억 톤의 수공(水攻)을 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려고 한다는 허황된 발표로 만들어낸 '평화의 댐'이요, 최근 들어서는 '화천산천어축제'를 개최하며 겨울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화천의 핵심 자원은 물(水)이라 해도 반박할 여지가 없다.

화천 소재 아를테마공원의 사랑나무와 반지교

서울에서 자차로 출발하여 춘천을 지나 46번 국도를 타고 도착한 화천의 첫 번째 방문지는 <아를테마공원>이다. 거례리 사랑나무로 불리는 왕따나무가 있는 이곳을 해바라기와 각종 들꽃을 심어 수목공원으로 개발한 곳인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흘러가는 북한강을 조망하면 아직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봄내음 물씬한 강바람에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다시 차에 올라 최종 목적지인 <비수구미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 북쪽으로 운전하다 보면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1988m 길이로 뚫은 우리나라 최북단 터널로 알려진 해산령 터널이 나온다.

해신령터널을 지나 (좌)해오름휴게소 (우) 비수구미 트레킹 시작점

터널을 지나자마자 좌측에는 산채비빔밥으로 유명한 해오름휴게소가, 우측에는 여러 이정표와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있는 굳게 닫혀 있는 철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비수구미 마을로 향하는 생태 트레킹 시작점이다.

강원도 3대 오지마을, 비수구미로 들어가는 데크길과 출렁다리

화천의 파로호가 품은 육지 속의 섬, 강원도 3대 오지마을로 알려진 <비수구미 마을>로 들어가는 방법은 3가지이다. 첫 번째는 해오름 휴게소 건너편 6km가량의 생태길을 걸어 들어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을 식당이나 민박을 이용하는 경우 파로호 선착장에서 주인이 운영하는 배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제일 간단하기로는 네비게이션에 비수구미마을을 입력하면 해산령의 아흔아홉 굽잇길을 지나 강변길로  들어서는데 이 길의 끄트머리에 차를 세우고, 산속 데크길을 1km가량 걸어 도보로 도착하는 방법이 있다. 잔잔하게 반짝이는 파로호와 군데군데 소박하게 피어있는 진달래를 벗 삼아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제는 3 가구만 남은 소박한 동네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비수구미마을이다.

비수구미 마을 전경

'파로호(破虜湖)'란 이름은 1951년 화천댐 공방전에서 국군이 중공군 3개 사단을 물리치고 압승을 거두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의미를 담아 명명하였다. 비수구미 마을은 원래 한국전쟁 때 피란온 화천민들이 정착하여 수십여 가구의 제법 번듯한 규모를 이루었으나, 1970년대 초반 법으로 화전(火田)이 금지되며 원주민들이 대부분 떠나버렸다고 한다.

비구수미마을을 품은 파로호와 비수구미계곡

유유자적 걸어서 들어가야 하는 이곳에서 도시에서 온 타지인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이다. 휘적휘적 걸음으로 비수구미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편평한 바위에 앉아 흘러가는 물을 명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니 세상사 마음 편하기만 하다.


쾌도난마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는 도시의 삶은 늘 누군가를 만나 협의하여 뭔가를 이끌어내야 했는데, 이곳에서만큼은 '아무도 안 만나도 아무 문제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마을을 떠나 들른 다음 방문지는 바로 '평화의 댐'이다. 5 공화국 전두환 前 대통령 시절 북한의 수공 위협을 보여준답시고 9시 뉴스에서는 당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던 여의도 63 빌딩이 잠기는 시뮬레이션을 보여주기까지 하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더랬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본인도 평화의 댐 조성 기금으로 돼지 저금통을 뜯어냈던 기억이 있다.

세계평화의 종 공원에서 조망한 ‘평화의 댐’ 전경과 당시 뉴스 보도 자료

'평화의 댐' 전면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초대형 트릭 아트 벽화인 '통일로 나가는 문'이 그려져 있고, 댐 인근에는 전쟁의 상징인 전투기와 탱크 등을 활용하여 만든 국제 평화 아트파크가 자리하고 있어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해오름휴게소의 도구리 산채비빔밥

충전하고자 떠난 당일치기 화천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음식이 바로 비수구미 마을 생태트레킹 코스 시작점에 자리한 해오름휴게소의 <도구리 산채비빔밥>이다. 도구리의 표준어는 '함지'인데, 함지는 큰 나무를 쪼개어 안을 파내서 만든 그릇을 말한다.  

해오름휴게소의 도구리 산채비빔밥과 감자전 한상차림

차량 통행이 적은 해산령 정상에 자리 잡은 이 휴게소는 음식점과 카페, 화장실 등을 겸한 현대판 주막이랄 수 있는데, 주인장 내외가 산에서 직접 채취한 야생 산나물로 거하게 한상을 차려낸다.

십여 가지 산나물과 고소한 들기름이 들어간 도구리 비빔밥을 쓱쓱 비벼내어 입안 가득 크게 베어 물고 강원도 된장으로 끓여낸 국물 한입 먹다 보면 호텔 뷔페 부럽지 않은 호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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