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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06. 2023

드라마 허준과 산청의 약선한정식

경남 산청군 금서면 한방테마파크 內 <동의약선관>

밀레니엄과 Y2K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40대 이상 세대라면 대한민국 역대 사극 최고의 시청률, 64.8%을 기록한 전광렬 주연의 <허준>이란 드라마를 기억할 것이다.

1999년 방영된 MBC 창사특집드라마, 허준

눈으로 글을 읽되 마치 눈앞에서 상황이 전개되는 듯한 극한의 필력을 지닌 故 이은성 작가님의 글솜씨는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라는 표현조차도 송구할 정도로 뛰어나다.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동의보감>은 1999년, MBC 창사특집 드라마 <허준>으로 제작되어 방영되었는데 극 중 인물을 맡은 이순재, 전광렬, 황수정 등의 혼신의 연기가 더해져 극 중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에 땀을 쥔다는 것이 어떤지를 알게 해 준다.

스승의 유지를 받든 얼음골 비사 장면

용천군수 허륜의 서얼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딛고 임금의 어의(御醫) 자리까지 올라가는 입지전적인 인물 허준,  제자의 의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본인의 시신을 해부하라 유언한 유의태, 살아있는 닭의 몸 안에 아홉 종류의 침을 찔러 넣는 구침지희(九鍼之戱) 내기를 한 유의태의 라이벌인 양예수 등 인물의 구도와 설정이 워낙 촘촘하여 분명 소설적 허구가 더해진 드라마건만, 현실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낳게 한다.

산청한방테마파크 초입의 탕약을 달이는 의생 조형물

허준이라는 국민 드라마가 낳은 <거대한 오해>의 결정체가 바로 극 중 공간 무대였던 산음현(現 경상남도 산청)의 <한방테마파크 동의보감촌>이다. 조선 의학을 집대성하여 동양에서 가장 우수한 의학서로 손꼽는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이 의술을 배운 지역이라 지자체에서 약초와 한방의 메카를 표방하고자 건립하였건만, 능청스럽게도 소설 속 인물인 신의 유의태 선생의 가묘와 동상은 큼지막하게 자리한 반면 훨씬 인지도가 높은 허준의 자취는 찾아보기 힘들다. 첫번째 산청 방문에선 미처 알아차리지 못 했지만, 금번 두번째 방문에선 문득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만든 테마파크라면 스승인 유의태보다는 훨씬 인지도가 높은 구암 허준을 내세웠어야 하지 않나라는 타당한 의문이 들어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산청한방테마파크의 신의 유의태 상

이은성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인 유의태(柳義太)는 허준 사후 100여 년 뒤 실제 산청의 명의였던 유이태(劉爾泰)를 모델로 하였다. 실존 인물 유이태 선생은 호환(虎患)만큼이나 무서웠다는 마마(홍역)의 치료법이 담긴 <마진편>을 저술한 명의이자 숙종의 어의로써 삼남 지방(경상 · 전라 · 충청)을 돌아다니며 신분의 귀천과 빈부를 막론하고 백성을 상대로 의술을 펼친 분이다.


정작 허준이 태어난 곳은 경기도 양천(現 서울의 가양동)이고, 외가 역시 전라도 담양인데다 그의 묘소가 경기도 파주에 소재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하면 허준은 살아생전 경남 산청과의 인연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록 허준과 산청의 인연은 문헌상 찾을 수 없다 할지라도 산청은 온화한 기후와 적절한 강수량에 지리산의 험준한 산세가 더해져 이곳에서 자생하는 약초의 품질은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산청은 산골 마을답게 보관이 용이한 절임 장아찌류와 무침 나물, 발효 음식 등이 발달했을 텐데 특산품이 약초이니 예로부터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병을 예방하는 <약선음식> 역시 남다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동의약선관 전경

한방테마파크 內 자리한 <동의약선관>은 산청에서 나고 자란 청정약초와 농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한정식당이다. 동의약선관의 모든 음식은 발효시킨 효소와 전통장을 베이스로 하여 조리되는데,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상다리 부러질 만큼' 화려하면서도 푸짐한 한상이 차려진다.

동의약선관의 약선음식들

면역과 항암 기능에 좋은 버섯이 잔뜩 들어간 한우모둠버섯전골을 필두로 당뇨 예방에 효과적인 노루궁뎅이 버섯,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해 주고 혈관 질환을 물리치는 삼채 튀김, 원기 회복과 가래에 효과가 좋은 더덕 무침, 효소로 담근 곰취와 두릅 장아찌 등 평시 일반 한식당에선 만나기 힘든 귀한 반찬이 가득이다.

경남 향토음식, 가리장국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음식은 우리네 앉은뱅이 밀을 발효시킨 <가리장>으로 끓여낸 들깨장국이다. 지역의 풍토에 따라, 주인장이 담그는 방식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라지만 대부분 우리가 먹는 찌개와 탕 요리의 소스는 고추장과 된장, 간장을 기본으로 한다. 가리장은 경남지역의 토속장으로 멸치 등의 해산물로 맛을 낸 국물에 조개 혹은 고동을 잘게 썰어 맛을 더하고 찹쌀을 풀어 걸쭉하게 만들어낸 요리로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식도락을 즐기는 나조차도 처음 경험하는 음식이다.

수라한정식 3인 상차림 (1인 42천원)

평상시 먹어보기 힘든 귀한 음식들로 거하게 차려낸 한상 가득 밥상은 산청으로 당장 달려가도 될 만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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