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와 나는 뜨거웠다, 절실했고.
내가 가진 결핍감. 그의 타고난 자상함과 섬세함.
거기에 금지된 행동을 하는 이들의 절박함이 더해져
우리는 매 순간 서로를 탐했고, 원했고, 점점 더 해갔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아내, 그의 두 아들을 알고 있었다.
학교 선후배를 넘어, 첫 직장에, 첫 자취에, 모든 일에 서툴고 어려웠던 나에게
부모와 같은, 돌봐주는 자리가 점점 그였다.
그가 직장을 옮겨야만 했던 그 해,
매일 보던 사람을 더 이상 못본다는 그 두려움이 우리를 휘감았고
거의 매일 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술자리가 있었고,
그 날 중 한 날, 기어코 나는 이기지 못하고 그에게 적극적인 몸짓을 했다.
조심스러웠고, 자책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는 아주 잠깐 망설였고, 나는 담대했다.
내가 돌아서려는 찰나, 그는 나를 잡았다.
매일 보던 장소는 직장에서 내 자취집으로 바뀌었다.
그는 마치 내 방에 원래 있었던 가구마냥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오랜 시간 머물렀다.
내가 조절하던 나의 시간은 '그'에 의해서 바뀌고, 조절되었고,
마침내 내 생활을 넘어 나의 남자친구와의 관계까지 점령당했다.
종종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뜻에 끌렸다.
나로 인해 관계가 불편해 지는 것을 회피하는 마음.
유독 잘 웃는데, 그게 지나쳐 곤란하거나 어려운 상황, 심지어 힘든 자리 마저도
웃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부자연스러움.
그로 인해 좋은 점도 많았지만... 곤란할 수도 있다...
상대의 기분을 불편하게 만들면 안되겠다는 습관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상대의 표정이나 몸짓에 과하게 반응하려는 노력.
엄마 아빠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큰 딸의 노력, 이었다.
더불어, 늘 웃어서 보기 좋다는 주변의 칭찬이 강화로 이어졌다.
근원적인 두려움.
버림받을까, 내가 잘 하지 못해서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아아. 불쌍하고 가여워라...
그 두려운 마음이 계속 내재하고 있다가
의지할 상대를 찾고, 그 기분을 맞추고, 그럼에도 마음에 안드는 것이 쌓인 나머지
어느날, 상대가 당황해 할 새도 없이 이별을 고하고 - 버림받기 전에 버리는 전략-
사랑받고 사랑해 주는 데 서툰 아이마냥 비뚤어져 버린 마음.
나를 보호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외로움.
이 모든 것의 복합체가 되어
그 다음 관계도, 그 다다음의 관계도 계속해서 틀어지고 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