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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IC Nov 10. 2024

[여행] 멋진 남자는 여기로 여행 간다.

"어디로 여행 가세요?"에 멋지게 답하는 법

어디로 여행 가세요?


이 질문을 받으면 멋진 남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국가나 도시 이름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유명한 랜드마크를 이야기해야 할까? 


스타일은 베이직과 취향이 결합되어서 만들어지는데, 멋진 남자라면 역시 여행에도 스타일이 있어야 하겠다. 여행의 스타일이라... 어떤 의미일까?


나는 사실 내 돈 주고 해외여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1주일 이상을 확보해서 여행하기란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운이 좋게도 나는 해외 출장이 비교적 잦은 직업이었다. 브랜딩 관련 출장이라 주로 유럽 구도심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헤쳐나가면서 옷가게, 소품샵, 서점 등을 뒤지는 것이 주된 미션이었다. 관광지나 뮤지엄 같은 곳을 방문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그래서, 에펠탑은 이동 중에 버스 창문 사이로 본 것이 전부이고, 대영박물관 바로 옆에 호텔을 잡아서 오픈하자마자 10분 정도 조깅하듯이 뛰면서 관람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대성당 옆 호텔은 늦은 밤이나 새벽, 벤치에 앉아서 성당을 감상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현지인을 관찰하는 즐거움. Barcelona, Bologna, Shanghai


출장 중에 그 도시를 즐기는 비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도 되었다. 출장 업무의 동선, 그 골목을 즐기는 것이 나의 여행 스타일이 되었다.


그 도시의 진심은 골목에서 발견된다.


골목에서는 그 도시 특유의 벽돌 컬러, 보도블록, 간판, 도로표지판, 건물양식, 빨래, 지붕 사이로 보이는 하늘, 구멍가게, 재래시장, 그라피티 그리고 마침내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강남의 멋진 건물들, 주말 명동을 돌아다니는 예쁘게 치장한 사람들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온 그리고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오브젝트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골목이다.


골목에는 몰랐던 친절함이 있고, 당황스러운 텃새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치장하지 않은, 가식적이지 않은 본래의 모습.


내가 한국에서 고민하며 노력하며 애쓰며 즐기며 슬퍼하며 환호성을 지르며 살아왔던 그 모습과 똑같은 모습을 그 골목에서도 마주할 수 있다.



골목에서 발견되는 것들. Bologna, Milano, London, Shanghai, Istanbul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나는 중국의 상하이와 광저우에서 살았다. 역시 여행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었기에 여행자의 마음을 품을 수는 없었다.


이 기간 동안 상하이의 골목골목을 한없이 돌아다녔다. 관광지는 손님이 왔을 때 모시고 가는 정도이고, 나는 철저하게 골목을 고집했다.


상하이는 골목 투어의 성지이다. 조계지 (20세기 초 서구 열강이 자치권을 가지고 통치했던 상하이 중심에 위치한 지역으로 지금도 그때의 서양건축과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의 골목들은 각자의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헤리티지를 품고 있다. 골목 이름 하나만 파보아도 역사의 숨은 이야기들이 책 한 권 분량으로 쏟아져 나온다.



London



지금 나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참 묘한 우연인데 제주도 역시 골목의 천국이다. 온갖 올레길과 둘레길, 역사 테마길과 종교마다의 순례길이 바둑판처럼 교차하는 곳이 제주도이다.


왕복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버티고 있어도, 한 블록만 뒤로 들어가면 현무암 돌담길과 귤밭으로 둘러싸인 골목길이 등장한다. 그 길에서 어김없이 역사와 스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제주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 그 오름에 이르는 진입로, 오름에 오르는 등반길 모두가 제주도의 골목이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언급한 '플라뇌르 Flâneur' (도시를 느긋하게 산책하며 관찰하고 사색하는 사람)가 골목 여행자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플라뇌르'는 철학적/사색적 그리고 실용적 의미로서 골목 여행을 즐긴다.


일상의 진정성, 타문화에 대한 이해, '느림'의 가치 발견 등을 추구하기도 하고, 현지인의 실제 생활상을 이해하거나 관광객에게는 숨겨져 있던 명소를 발견하는 매력을 추구하기도 한다.



London의 벽돌과 문들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은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에서 이렇게 말했다.


낯선 곳에서는 일상적인 것들도 특별해진다. 평범한 슈퍼마켓의 진열대, 길거리의 간판, 사람들의 대화까지도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레베카 솔닛 Rebecca Solnit이 ⌜걷기의 인문학 Wanderlust: A History of Walking⌟에 쓴 글도 골목 여행을 잘 설명하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세상과 관계 맺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걸으면서 우리는 풍경의 일부가 되고, 도시의 리듬에 동참한다.


여행의 목적이 구경이 아닌 경험과 이해를 위한 것이라면, 한 블록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보기를 추천한다.


"이번 파리 여행에서 어디 가보셨어요?"란 대답에 뭐라고 대답하면 멋진 남자다울까? "파리의 지하세계요."라고 대답해 보면 어떨까? (실제로 파리의 지하세계를 소개하는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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