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형 삶과 동사형 삶의 차이
5년 전 겨울 금요일.
춘천에 있는 남이섬으로 행했다. 회사 워크숍이 있어서 이른 아침부터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지만 왠지 모를 피로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간단한 일정 안내를 받은 후 이어지는 첫 시간은 강우현 당시 남이섬 대표님의 강연이 있었다. 교육 기관에서 일하는 터라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보다 평가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얼마나 신선한 이야기를 하나 보자’ 생각하며 초점 없는 눈으로 강사를 응시했다.
평가를 하려는 시선은 어느덧 울림과 감동으로 바뀌었다. 남이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강우현 대표의 생각은 깊이가 있었고, 도전의 여정은 담대하고 창의적이었다. 특히 모든 서비스를 예술과 접목시켜 대중의 사랑을 받는 남이섬 문화를 만들어낸 스토리는 정말 흥미로웠다. 어느덧 시선은 나 자신을 행해 있었다. ‘나도 한 때는 문화예술 산업에 대한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일의 꿈보다 오늘의 일만 생각하고 있구나.’
강연이 끝나고 나서, 나도 모르게 강우현 대표에게 가서 말을 걸고 있었다. “대표님! 강연 잘 들었습니다. 저도 문화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는 불쑥 나타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팬과 종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들고 있던 다이어리와 펜을 드리니 왼손으로 이렇게 적어 주었다.
‘관심은 많은데 관계는 없다고?’
우문현답처럼 무엇인가 마음을 때렸다. 그렇다. 지금까지 나는 관심 있다는 것이 많았다. 특히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 미술 경매회사에서 잠시 일을 하고, 미술관에서 장기 자원봉사를 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미술관에 가고 가끔 해외여행을 가면 항상 미술관부터 찾았다. 나름대로 관심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주변 사람에게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항상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있었다. 나와 미술은 있는데 연결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 강우현 대표가 이야기한 거처럼 관심은 많은데 관계되어 있지 않고, 멀리서만 지켜봐 왔던 것이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직접 그려볼 수도 있고, 글에 관심이 있다면 직접 써볼 수도 있었는데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오로지 관심만 가져왔던 것이다.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해 보자. 살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 저 사업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건데’ ‘아, 저 물건 내가 유행할 줄 알았는데’ ‘아, 저 사람 내가 잘 될 줄 알았는데’ 등등. 나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서점에 가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자리는 모두 트렌드 도서 차지다. 그만큼 빨리 변화하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소수의 사람들은 그 사소한 관심을 자신에게 연결하여 관계를 만들고 변화시킨다. 시인은 사소한 풍경에 대한 관심을 자신에 대한 관계로 바꾸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하고, 성공한 CEO는 사회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자신에 대한 관계로 바꾸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관심은 명사이고, 관계는 동사이다.
관심은 책, 그림, 사진이다. 하지만 관계는 글쓰기,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다. 즉, 관심은 명사적 삶이고, 관계는 동사적 삶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5년 전, 강우현 대표가 이런 의미로 내게 이야기를 던졌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지금 내게는 '관계의 삶, 동사의 삶'을 살아 보라고 들린다. 불현듯 생각난 그의 말을 잊고 멀리서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시간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관심이 있다면 관계를 맺어보자. 누가 알겠는가, 박제된 꿈이 다시 살아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