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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 느티나무 May 01. 2021

<노매드 랜드:Nomadland>

오스카 최우수 영화, 감독,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논픽션 영화


노매드 생활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밴에 살림을 차리고 오라는 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소소한 음악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기타를 치며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언더그라운드 싱어송 라이터들이 다운타운의 <Front Street>이라는 간단한 커피와 스콘이 준비된 아담한 음악 공간에 찾아와 노래를 하곤 했었다(코로나 이전에). 들어가는 건물 입구 옆에는 뮤지션이 장식한 자그마한 밴이 놓여 있었다.


LA에는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점점 자기 주거 공간에서 쫓겨나 차나 텐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뉴스를 본 것이 몇 년 전이다. 코로나 이전 캘리포니아 베이 지역에서 6만 명의 홈리스들이 차나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집은 없지만 최소한 일을 가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꾸려가는데 반해 텐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삶을 산다. 지금은 그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최소한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영화가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아서 보고 싶기도 했지만 사회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식 영화인 것 같아 무척 관심이 갔다.


1. 돌아올 집이 없어도 떠날 수 있을까?(방랑자처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집은 곧 휴식, 안정, 쉼을 의미하는데 그것을 제공하는 장소 없이 떠돌아다닌 다는 것은 쉼 없는 일이라 느껴지기 때문에 자유로움 보다는 공포에 가깝다.

이런 느낌을 주는 영화가 오래전에 보았던 <퐁네프의 연인>였다. 그때의 충격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었다. 불춤 추는 길거리 예술가 알렉스와 눈이 멀어가며 그림 그리는 미셸의 사랑이 생경해서,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사랑이라서 보는 내내 한기가 들었다. 알렉스가 스토커처럼 느껴지고 그의 범상치 않은 모습과 행동은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지붕 없는 길거리에서 잠드는 연인들은 보기에도 너무 안타깝고 조마조마했었다. 이영화를 다시 본다고 해도 그들이 얼마나 사랑했는가 보다는 그들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만 느껴질 것 같다.


Fern이 짐을 꾸려 다른 장소로 떠날 때마다 혹시 방랑벽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밴을 몰고 가다 세우고 황무지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첫 장면에 "그렇지, 문명을 떠나면 가장 먼저 아쉬워지는 것이 화장실 문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얼마만큼 고독할 수 있을까?(구도자처럼)

RV park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과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섞인다. 게 중에 서로 도움을 주면서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 자기의 길을 찾아 떠난다.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있고 깊은 우정을 쌓는 사람들도 생기지만 결국은 헤어진다. 헤어짐이 일상이 되는 삶...


얼마나 내면이 강하면 끝없이 헤어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Fern이 구도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사준 소중하게 간직했던 접시를 데이브가 깨트리자 아쉬워하며 다시 접착제로 붙이는 장면에서 과거의 기억을 덜어내기 위한 여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찾아와 집으로 돌아간 데이브가 같이 있자고 요청하지만 게스트 베드룸의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밴으로 들어와 잠을 청한다.

밴이 고장 나 큰돈이 필요하자 여동생을 찾아간다. 중산층의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여동생은 남은 방이 있으니 같이 있자고 간청하는데 이를 만류하고 나온다.


3.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이별(여행자처럼)

RV park에서 만난 스웽키는 폐에 암이 번지면서 몇 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가 좋아했던 알래스카를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고 하면서 떠나며, "내가 죽거든 모닥불에 자갈돌을 올려달라"라고 한다.

다시 만난 친구들과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며 하나씩 자갈돌을 올려놓기 시작한다.

"그녀가 자갈돌을 좋아했으니까"라며 한마디 씩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이 거창할 필요가 없고 이런 식으로 기억해 준다면 어떤 호화로운 장례식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는 이유는 상실의 아픔 때문에

RV park의 멘토는  노메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아들이 살아있으면 33살이 되는데 5년 전에 목숨을 버렸다." "그 애가 없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을 이유가 있나?" 그래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Fern이 그제야, 남편의 부재(사별)가 견딜 수 없는 상실로 다가왔고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매번 헤어지지만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만나지 않느냐? 한 달 후에 다시 만나게 될지 일 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 내가 다시 아들을 만나게 되듯이 너도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야."


인생의 길은 우리의 죽음 너머의 길과도 닮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너무 슬퍼하지 마 이별은 잠시 뿐이고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돌아가 전에 살았던 집에 들러 한 바퀴 둘러보지만 머물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나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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