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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 느티나무 Dec 22. 2020

Netflix: <힐빌리의 애가>

엄마와 아들이 선택한 서로 다른 두 갈래 길

<메리지 스토리>를 리뷰할 때는 다른 작가들이나 자료를 찾아보는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영화만 보고 리뷰를 작성하였다. 그러고 나서 영화 리뷰를 골라서 읽게 되었는데 <Hillbillie Elegy>에 관하여 쓴 리뷰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시각에서 읽히는 이 영화는 어떨지  나도 궁금해서 보게 되었다.


실화에 바탕을 두고 쓰인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흙 수저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예일 법대를 졸업한 성공 스토리이다. 힐빌리 사람들이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고통스럽게 내 몰린 삶이 현재 진행형으로, 관심을 끌 만한 영화가 되기 위한 충분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여기서 자세한 스토리의 나열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하고  엄마 베브와 아들 JD의 삶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 보고 어떤 결과가 도출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힐빌리는 글자 그대로 힐, 언덕에 사는 사람들이다. 켄터키, 테네시, 조지아, 버지니아주 일대에 걸친 애팔래치안 산맥 기슭에 사는 사람들로 백인 저 소득층을 일컫는다. 이 영화의 처음 배경은 패밀리 리유니온을 갖는 장소로 켄터키, 힐빌리이다.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비치는 녹슬고 연기 나는 공장을 향해 걸어가는 남루한 행색의 노동자들이 보인다. 가족들이 돌아온 곳은 평평한 러스트 벨트에 위치한 미들타운 오하이오이다. 제목을 왜 힐빌리로 붙였는지 약간의 혼선이 왔다. 할머니가 문명으로 돌아와 기쁘다고 할 때 JD는 미들 타운을 문명으로 부르기엔 좀 그렇지 않나 라며 뭔가가 빠져 있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바로 '희망'이라도 읊조린다.


엄마, 베브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집을 나서 미혼모가 되었으며 폭력적인 가정환경으로 어릴 때 트라우마가 있다. 자기의 트라우마와 이러저러한 남자들을 거치며 안정되지 않는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아들에게 풀며 학대한다. 분노 성격 장애자처럼 아이들을 막 대하지만 아들이나 딸은 외려 사려 깊고 착하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정도로 영리하며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장례식 후, 상실감을 주체하지 못해 환자에게 주어야 할 약(마약성 진통제)에 손을 대게 된다. 그리고 기분이 업되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병원 복도를 돌다가 해고당한다.


가까스로 다시 간호사 면허를 받기 위해 마약 테스트 용으로 소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아들에게 부탁하자 거절하는 JD에게 할머니가 한 번만 봐주라고 하자 "이렇게 매번 엄마가 빠져나가게 도와준 것이 할머니라며 둘 다 나쁘다"라고 비난한다.  어느 날 할머니가 폐렴으로 병원에 누워 지난날을 회고하다가 딸, 베브가 안타깝기 그지없으나 항상 남 탓만 하고 자기의 삶에 전적으로 책임을 진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손자를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다. 베브는 엄마가 돌아가시자 다시 마약 헤로인에 손대기 시작하고 이 시점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전개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는 빈털터리가 된다. 자식에게 도움은커녕 짐만 되는 엄마를 모텔에 두고 나오면서 함께 있어 달라 애원하는 엄마에게, JD는 무엇이든 돕겠지만 함께 있을 수는 없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떠난다.


관전 포인트: 약물 중독은 누구의 책임인가? 개인의 잘못인가 아니면 사회의 책임인가? 정말 가난한 힐 빌리 사람들은 정부의 보조금이나 푸드 스탬프의 도움으로 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조건은 아니지 않은가? 초 반부에 보인 쇄락한 공장과 실업이 힐빌리의 약물 중독에 어느 정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값싸고 중독성이 강한 약물이 진통제로 처방이 되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약물에 중독되는 현실 이야기는 여기서 중략)



아들, JD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1인 무료 배급에 손자 먹을 음식을 보태려 사정하는 할머니를 보며 이제까지의 게으른 삶을 청산한다. 맨 먼저 설거지를 하며 청소를 한다.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하고 할머니를 도우려 알바를 하기 시작한다. 미국의 청소년들이 대부분 고등학교 재학 중에 알바를 한다. 아르바이트할 만한 직업은 널려 있어 구하기 쉽고 현실에 눈뜨는 가장 소중한 경험이다. 가난한 집 아이 부자 집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알바에 나선다. 이렇게 일 해본 경력이 없으면 대학 졸업 후 취직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전 직장의 추천서가 없이는 직업을 구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에 입대를 하고 이라크 전쟁에 다녀오며 오하이오 주립대를 정부의 도움으로 2년 만에 마치게 된다.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입대를 한다. 내가 아는 지인은 남편이 의사인데 아들이 네이비에 입대하였다. 대부분 학생들이 5년 만에 졸업하는 것에 비해 2년이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그 후에 예일대 법대에 진학한다. 여전히 알바도 하고 학자금 대출도 받아야 하지만 입학이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전 포인트: 미국의 대학에서는 스펙만 보고 뽑지 않는다. 공부만 잘한다고 입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스토리를 원한다. 왜냐면 대학 공부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사람은 헝그리 정신이 있는 사람으로 더 열심히 공부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골고루 뽑아야 그 사람들이 졸업 후 자기가 자란 지역사회에 돌아가 봉사하거나 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JD가 영리한 엄마의 머리를 닮아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성공이 거의 불가능한 환경에서 이를 극복한 스토리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의 시스템이 한 사람은 루저로 다른 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한 사람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약물에 의존했고 비난의 화살을 남한테 돌렸으며 다른 한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에도 바람직한 선택을 하였다. 면접 인터뷰에서 JD가"우리는 매일 무엇이 될지 선택할 수 있다."는 할머니의 가르침을 말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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