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젊은 느티나무 Feb 23. 2021

이 조그만 것이 그리 깊은 맛을 낼 줄이야

마음 안에 들어오면 언젠가는 내 옆으로

나와 가장 오랫동안 같이 했던 커피 메이커는 '키친 에이드'에서 만든 것으로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커피 빈을 그라운딩 하는 컵이 위쪽에 달려있어 직접 갈아서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으며 프로그래밍할 수 있어 다음 날 아침 일어나면 커피가 준비가 되어있게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처음 몇 번을 빈을 갈아 내려 마시려 했는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차츰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프로그램 기능은 한 번도 써먹어 본 기억이 없다. 커피가 내려진 즉시 마시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 맛이 소태같이 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커피메이커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는데 한 번에 한 컵 정도의 용량만을 내리는 커피 메이커의 등장이었다. 무척 매력적으로 보였고 낱개들이 커피 파드(pod)가 용기에 꼭 맞게 부착되어 있었다. 일반 커피가 아니라서 따로 커피 파드를 사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가 않았다. 친구 집에 놀러 가보니 필터를 사용해 보통 원두커피를 넣어 한 컵을 뽑아 주는데 맛이 남달랐다. 무슨 커피냐고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보니 '크로거'라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좋은 브랜드의 커피가 맛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그전 보다 손님 접대의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들이 집을 떠나 대학에 기숙사로 가고 그동안의 부엌살림을 정리를 하면서 사이즈가 작은 것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커피 메이커도 그중에 하나였다. 무엇을 고를까 하다 '프렌치 프레스'를 사용하는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장만하기로 했다. 맛에 의구심이 갔는데 '괜찮다'라고 하는 말을 믿었고 무엇보다 세척이 편리할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앙증맞은 프렌치 프레스는 보는 것 만으로 도 힐링이 되었다. 그러나 맛에서 기존의 커피 메이커의 커피보다 현저히 차이가 났다. 프레스 하기 위해 5분 정도 기다리는 것이 일에 한 스텝 더하면서 번거롭게 느껴졌다.


다시 '키친에이드' 커피메이커를 꺼내 쓰기 시작했다. 쓰기 편하고 맛이 좋았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매번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하고 버리자니 원두커피가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Keurig'에서 나온 앙증맞은 커피 메이커가 눈에 들어왔다.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기존의 가격보다 30% 정도 다운돼서 가격으로 망설여지지는 않았는데 집에 물건을 보태는 것이 싫어서 두 해를 사지 않고 버텼다.


우리 집에 커피 마시는 사람은 나뿐이고 번번이 커피 낭비를 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에 엊그제 제값 다 주고 미루어 두었던 구매를 저질렀다.

그 앙증맞은 커피 메이커에서 나온 커피가 그동안 집에서 내가 만들었던 어떤 커피보다 맛이 좋았다. 물과 커피의 최적화된 비율이 커피 맛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든다.
장점을 열거하자면,

-맛이 좋고
-왠지 그전 커피보다 속이 편하고
-커피 낭비가 없고
-종이 필터를 써서 K-cup pod  써도 되어 환경 친화적이고
-물탱크가 완벽히 비워져 위생적이고
-부담 없이 사용하고 관리가 편하다

마음 안에 들어온 물건이 두 해의 퇴짜를 맞았으나 결국 내 곁으로 오고 말았다.

마음 안에 들어온 것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며 무엇을 마음에 들이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쁜 생각이든 좋은 생각이든 일단 마음에 들이면 실현될 테니 가능한 좋은 생각을 들일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의료 보험이 비싼 이유 중의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