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키 17〉(2025) 감상문
이 영화도 개봉 첫 주에 봤는데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이제야 써봅니다. 저는 나름 영화 재밌게 봤기 때문에 덜컥거리는 흥행 추이를 보니 좀 착잡하긴 합니다만, 여전히 추천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상문은 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을 독자로 상정하여 쓰겠습니다. 사실 멀리 에둘러 가지 않는 이상, 스포일러 없이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쓰기는 힘드네요. 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나 마케팅, 그리고 크리퍼에 대한 감상은 일일이 쓰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는 〈기생충〉(2019) 이후 나온 봉준호 감독의 영화입니다. 하드 SF 장르인 원작 소설 『Mickey 7』을 봉 감독 테이스트로 각색 및 연출한 작품입니다.
영화의 핵심적인 설정은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데이터화해서 '프린트'를 통해 복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인류는 일련의 사건으로 겪고 이 기술을 제한적으로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는 신행성을 개척단 내에서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라는 보직을 받은 한 사람에게만 허용이 됩니다.
'익스펜더블'은 죽어도 즉시 그때까지의 기억을 가진 채로 다시 프린트됩니다. 그래서 온갖 위험한 임무 및 인체실험 대상으로 활용되는, 말 그대로 '소모품'입니다. 익스펜더블은 각종 폐기물을 원재료로 프린트되므로, 그들의 존엄성도 그 정도 가치로 여겨집니다.(『설국열차』에 나오는 단백질 블록의 인간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인 '미키 17'은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지구에서도 이미 비루한 삶을 살고 있던 미키 반스가 최후의 선택으로 지구를 떠나기로 하고, 그 유일한 방법이 익스펜더블로 자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죽고 다시 프린트되는 삶을 삽니다. 미키 반스를 원본으로 삼아 17번째 프린트로 세상에 나왔으므로 '미키 17'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참고로 판화나 사진 같은 경우, 한 판을 프린트할 때마다 고유한 일련번호를 붙이곤 합니다. 같은 원판을 가지고도 찍을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각 판의 고유한 가치를 나타내기 위해 번호를 붙이는 겁니다. 이것은 일종의 복선이 됩니다)
어차피 죽어도 다시 프린트되기 때문에 함선 내의 사람들도 주인공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그의 연인은 물론이고 본인 스스로도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개척의 목적지인 행성 니플헤임에 착륙하여 겪은 약간의 사고로 인해 미키 17은 자기가 죽은 줄 알고 프린트된 미키 18과 공존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겪게 됩니다. 미키 본인도 관객들도, 이때야 비로소 미키들이 프린트될 때마다 새로운 개성을 갖고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제야 미키 17은 자신이 무한히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게 아니고, 매번 태어날 때마다 고유의 존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미키는 처음으로 '죽기 싫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게 됩니다.
하지만 복제된 개체 여럿이 동시에 존재하는 '멀티플'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미키 17과 미키 18은 공존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키들은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시스템 및 독재자와 맞서게 됩니다. 최종적으로는 소모품이 아닌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찾아내고, 미키 반스라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영화는 계급과 차별을 지향하는 시스템과 이를 '전복'하려는 주인공이 맞선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 〈기생충〉과 함께 '전복 3부작'으로 묶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전복'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이 아주 핀포인트로만 행사되기 때문에, 전반적인 밝은 분위기와 어우러져 '봉준호 순한 맛'이라는 평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수많은 미키들이 부대를 이루어 조력자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는 결말까지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전복' 장면의 핵심 주제는 '응징'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숨이 어떻게 해서 가치를 가지게 되느냐' 하는 데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폭력은 연출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묘하게도 최근 보는 영화마다, 주인공이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 장면에서 크게 감동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미키 18이 누른 버튼에 제 눈물샘이 폭발한 것은, 그의 희생이 아니라 결심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투병 이후, 미혹된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나이 50이 되기 전에 지천명(知天命)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