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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신들의 동래온천 사랑

멀리 둘러가도 동래온천은 들렀다 가겠다.

by 정영현
예조의 보고에 의거하여 의정부에서 아뢰었다.
"내이포(乃而浦)에 도착한 일본 사신들이 서울에 올라왔다가 되돌아가는 길에 모두 동래온정(東萊溫井)에서 목욕을 합니다. 그래서 길을 둘러 가고 역로를 달리니, 사람과 말이 모두 피곤합니다. 금후로는 내이포에 도착한 일본 사신은 영산온정(靈山溫井)에서 목욕하게 하고, 부산포에 정박한 일본 사신은 동래온정에 목욕하도록 하여 길을 둘러가는 폐단이 없게 하소서." 왕이 그대로 따랐다.
- 『세종실록』 권80 20년(1438) 3월 1일 기사


'내이포'는 현재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있었던 옛 포구입니다. '제포(薺浦)'라고도 하는데, 원래 우리말로 '냉이개'라고 불리던 지명을 한자로 옮기면서 발음을 따서 '내이포', 혹은 뜻으로 풀어 '냉이 제(薺)'라는 글자를 써서 '제포'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진해 제포 유적의 위치. 주변의 바다가 매축되어 내륙화되었다.

내이포는 조선 전기에 일본인들이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던 세 곳의 개항장 중 하나입니다. 조선 초 일본에 대한 개항장은 몇 차례 변동을 거쳐 1426년 내이포 및 부산포(富山浦, 현재 부산 동구 좌천동), 염포(鹽浦) 세 곳으로 확정됩니다. 이른바 '삼포(三浦)'입니다.


3곳의 포구 중에서도 특히 내이포와 부산포가 교역의 중심이 되었고, 특히 내이포는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곧 무로마치 막부의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파견하는 '일본국왕(日本國王)' 명의의 사신은 주로 내이포와 부산포를 통해 입항했습니다.


포구에 배를 정박한 일본 사신들은 조선 국왕에게 외교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한양의(현재 서울 인사동에 있었던) 동평관(東平館)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쉬지 않고 움직이면 편도로 보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내이포에서 한양까지 올라가는 길과 부산포에서 올라가는 길은 달랐습니다.


내이포(창원)에서는 추풍령을 넘어, 부산포(부산)에서는 조령(문경새재)을 넘어, 염포에서는 죽령을 넘 한양에 이른다.(출처: 『한국일보』, 대구한의대 김성우 교수)

내이포로 도착한 일본 사신들은 타고 온 배를 그곳에 정박시켰기 때문에 내이포로 돌아가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일을 마친 그들은 내이포로 돌아가지 않고, 부산포 방면으로 길을 둘러 갔습니다. 사신들이 동래온정, 즉 동래온천에 들러 목욕을 하고 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따로 마무리를 하는 '시메(〆)'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온천욕을 정말 좋아하지요. 긴 사행을 마친 일본 사신들은 동래에서 '마무리 온천(〆の温泉)'을 하고 귀국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양에서 동래온천에 들렀다가 다시 내이포로 가려니 길이 멀어집니다. 정해진 일정에 맞추자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신들도 피곤하고, 길안내를 하는 조선 측 수행원들도 일이 번거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조선 측에서는 부산포에 도착한 일본 사신은 동래온정을 이용하게 하고, 내이포에 도착한 일본 사신은 영산온정을 이용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한 가지 의문. '동래온정'이 동래온천인 건 알겠는데, '영산온정'은 어디일까요?


'영산온정'은 현재 창녕군 남동부에 있었던 '영산현(靈山縣)'에 있었던 온천입니다. 영산현은 현재 창녕군 영산면이 그 중심지가 됩니다만, 그 주변 지역을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역 안에 부곡면이 있습니다. 이제 눈치채셨겠지만, 영산온정은 창녕의 '부곡온천'입니다. 한때 '부곡하와이'로 유명했던 곳이지요.


전성기의 부곡하와이

지금은 부산·경남 지역 이곳저곳에 온천이 개발되어 있고, 부산 해운대·창원 마금산·울산 가지산 등 온천으로 유명해진 후발주자들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수질이 뛰어난 곳으로 꼽히는 두 곳은 아무래도 동래온천과 부곡온천일 것입니다. 온천계의 라이벌이랄까요?


저는 동래 사람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 걸 수도 있겠지만, 일본 사신들이 굳이 길을 둘러가며 동래온천을 찾은 것을 보면, 당시 동래온천이 부곡온천보다 더 유명하고 더 선호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1960년대의 동래 온천장 입구

현재까지도 동래온천은 수온과 수질, 수온 면에서 부산·경남 지역에서 최고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동래온천은 너무 도심에 위치한 관계로, 그리고 주변이 아파트 촌으로 개발되는 바람에 온천휴양지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어진 천연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개발 정책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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