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계를 욕하는 당신에게
내가 N번방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보다 오래 전의 일이다. 한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었고, 곧 사라졌지만 내용을 어렴풋 기억하고 있었다. 텔레그램을 이용하고, 어린 피해자가 많으며 그들을 노예라 부른다는 점, 방을 공유하거나 물려준다는 점 등이었다. 그래서 'N번방'의 이름으로 화제가 되었을 때, 그때 그 일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범인이 잡힌 줄 알았다. 글을 읽고 얼마 후 다크웹에서 아동성착취물을 공유했던 운영자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미국에서 송환을 요구한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보니 이 둘은 별개의 사건이었다. 참담한 일이다.
다크웹과 N번방 사건은 모두 아동성착취물을 공유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딱 하나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학대했느냐 이다. 다크웹에선 주로 물리적 폭행에 의해 성폭력이 행해졌다면(그러한 영상물을 공유했다면), N번방은 정서적 학대에 의한 성착취로 성폭력이 행해졌다. 그리고 이 착취라는 개념에서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왜 피해자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는가?'
신상정보와 신체가 노출된 사진으로 협박을 당했다는 답변에는 다시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
'그건 최초로 어떻게 넘어가게 된 건데?'
이렇게 피해자의 사정과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것이 있다. 바로 '일탈계' '스폰 알바'이다.
개념 자체가 생소한 이들을 위해 짧게 설명하자면, 일탈계는 일탈을 위한 계정으로 SNS나 소셜미디어에(얼굴을 제외한) 자신의 신체부위를 올리거나 '아주' 개인적인 소지품을 파는 가명의 계정을 말한다. 스폰 알바는 돈을 대가로, 즉 조건부로 이성을 만나는 것으로 조건만남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여기서 피해자들에 대한 시선이 둘로 갈린다. 하나는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다' 말하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들의 고통에는 공감하면서도 '애초에 일탈계를 왜 만들어?' '스폰 알바로 돈을 벌려고 했을 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한 것 아닌가?' 라며 도덕성을 문제 삼아 일정 부분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다.
나는 이 글에서 일탈계를 만들거나 스폰 알바로 돈을 벌고자 했던 청소년들의 도덕성에 대해선 논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며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이다. 다만 명확히 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도덕성 내지 순수성 결여의 문제가 성범죄를 정당화하는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성범죄 피해자에게서 순결-순수성을 검증하려 하는 한국사회의 잘못된 관습이다.)
나는 피해 청소년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충분한 선도와 성범죄 예방교육이 이루어졌는가 자성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일탈계와 스폰 알바를 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여전히 그들은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다. '성적 착취를 당해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
성범죄 예방은 '적절한' 성교육으로 부터 이루어진다. 여기서 적절한 성교육이란 시대에 맞는 성교육을 의미한다. 성교육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내가 중학교 때 받은 성교육이라곤 경이로운 출산, 낙태의 끔찍함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이었다. 그 외 특별 수업으로 (남녀가 분반하여) '섹스는 무조건 미루는 것이 좋다'는 강사 선생님의 당부와 콘돔을 바나나에 끼운 후 한 명씩 돌아가며 만져보라는 것이 다였다.
성교육은 나에게 올바른 섹스와 성병의 위험, 피임이 실패할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 성범죄의 가해자는 누가 될 수 있는가, 임신은 여자에게 얼마나 큰 희생이 따르는가 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사자가 문란한 성생활을 하지 않아도 성병에 걸릴 수 있고, 콘돔은 백 퍼센트 피임이 되지 않으며, 친족 간에도 성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과, 임신은 경력단절의 위험과 여성의 몸의 여러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 등 모두 인터넷과 뉴스, 친구와의 이야기, 언니의 임신과 출산을 옆에서 보면서 스스로 알게 된 것들이었다.
내가 받았던 성교육은,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로서 도래할 시대상을 담지 못했다. 그러한 시대를 맞이할 여성으로서의 날 준비시키지 못했다. 섹스는 '무조건 미루는 것'이 아닌 '서로가 원할 때' 하는 것이며, 임신은 여성에게 상상 이상의 책임감과 희생을 요구되기에 (원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피임하되 그 역시 완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아는 것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갈 나에게 가장 필요했을 성교육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청소년들에게는 어떠한 성교육이 필요할까? 지금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핸드폰과 태블릿 컴퓨터 등 다양한 전자기기와 인터넷을 접하며 자란다. 디지털 시대의 빠른 변화를 직격으로 맞는 세대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성범죄는 변화무쌍하게 형태를 바꾸며 자기 복제한다. N번방 사건은 디지털 시대에 맞게 변이한 성범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순히 몸을 소중히 하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라 교육시킴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9살의 조카가 몇 달 전 나에게 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체육선생님이 이모 괜찮대!' 무슨 소린가 해서 물어보니, 자신의 체육선생님이 여자 친구가 없다는 말에 직접 핸드폰을 꺼내 나의 카톡 프로필과 사진들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거기에 묻지도 않은 나이며 전남친 전력까지 말한 것은 덤이었다. 당황스러웠고 불편했지만 개인정보에 대해 훈계하기엔 어린것 같아, '다음부턴 이모 사진 보여주고 그러지 마~' 하고 말았다.
그러나 비슷한 일은 종종 발생했다. 조카는 내가 자거나 밥을 먹는 모습을 몰래 찍어, 친한 친구와의 카톡방에 올리고는 그것으로 날 놀려댔다. 조카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놀이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분명 주의를 줘야 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주의를 주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N번방 사건이 터졌고, 동시에 날 약간 충격에 빠트린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