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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 Apr 14. 2020

N번방, 성교육은 언제쯤 시대를 따라잡을까? (하)

일탈계를 욕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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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 글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유학생 정보공유를 위한 오픈톡방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조카가 옆에서 슬쩍 보더니, 단숨에 내가 들어가 있는 오픈톡방을 찾아내 들어와 말을 건 것이다...! 나는 약간 충격에 빠졌다. 내가 하고 있는 단톡방이 오픈톡방인 것은 어떻게 알았으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찾았단 말인가?


생각해보니 조카는 가르쳐주지 않은 유튜브, 넷플릭스, 앱다운 등 스스로 터득해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특정 사이트나 앱은 부모 전용 앱으로 접근을 막을 수 있다지만, 오픈 톡방은 그럴 수 없었다. 더구나 N번방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비슷한 피해자가 될 뻔했던 아동의 부모가 올린 글이 있었는데, 그 수법이 오픈 톡방에서 '게임머니'를 준다는 식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때가 왔음을 알았다. 조카를 불러놓고 그동안 본인이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남에게 (특히) 모르는 사람에게 보낸 사진이 어떻게 이용될 수 있으며, 그럴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그렇기에 이모의 사진이나 개인정보를 남에게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가르쳤다. 다행히 조카는 잘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자, 이모가 방금 네 얼굴이나 몸 사진을 찍어서 보내는 건 위험하다고 했지? 그럼 만약 그 사람이 네 알림장 사진 같은 걸 보내달라면 어떨까?'


눈치 빠른 조카는 '안된다'라고 답했지만 '왜?'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알림장에 네 이름이랑 학교, 몇 반인지가 써있잖아. 그래서 그런 것도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


조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이런 것 가르치냐는 물음에 조카는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몸을 허락 없이 만지게 하지 말 것과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 것, 무슨 일이 있을 때 크게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할 것 등은 배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자신의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해 배우고 있는, 휴대폰과 태블릿 등에서 조심해야 할 성범죄 예방법은 배우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에게 당연한 것이 남에게도 당연할 수 없다.


이 일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어른에게 당연한 것이,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인 즉, 나와 같은 어른의 입장에서는 '몸을 소중히 하는 것' 은 '일탈계를 만들어 나체사진을 올리거나 스폰 알바를 하지 않는 것'과 이콜(=)의 관계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사진이 공유되는 것이 불쾌한 일이지만, 조카에게는 짓궂은 놀이다. 우리에겐 무단결석이나 학원 농땡이 정도가 일탈이었지만, 그들에겐 익명성에 기대 신체 사진을 올리고 관심을 받는 것이 '일탈' 수준이다. 부도덕한 조건만남은 인터넷 상에서 '알바'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여 소비된다.


(나로서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성교육과 현시대 청소년 의식 사이에 생긴 간극을 좁힐 수 있다. 일탈계, 스폰 알바, 랜덤채팅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이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은 알려줄 수 있다. 그것이 지금의 성교육이 해야 할 역할이다.


비뚤어진 성관념, 가해자를 위한 성교육.


N번방 사건을 보면 피해자를 '노예'라 칭한 만큼, 그들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학대함으로써 상대적 우열감과 성적 쾌감을 느끼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취향을 넘어) 잘못된 성관념은 하나의 원인을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보고자란 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고, 선천적으로 사디스트(sadist)일 수 도 있고, 무한한 경쟁 사회에 도태된 이들의 열등감과 분노가, 상대적 약자에 대한 학대로 표출된 것일 수 도 있다. 


물론 이에 관한 '하나의 만능 해결책'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브레이크를 밟아줄 수 있는 것이 성교육이다. 성교육은 투트랙으로 행해져야 한다. 하나는 성범죄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의 것이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성범죄 그 자체를 억제하기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 특히 여기선 잘못된 성관념, 성의식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주목적이 되어야겠다.



남성의 성기 사진은 무기가 되어 여성에게 수치와 모욕감을 주지만, 여성의 성기 사진은 남성에게 에로틱한 전시물로 소비된다. 동시에 협박수단이 된다. 남성 스타의 성관계 비디오는 은근한 자랑거리가 되지만 여성 스타의 성관계 비디오는 사회적 단두대로 작동한다.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음란물이나 성인게임과 영화 등에서 여성은 폭력적으로 다뤄지며 여성 스스로도 이를 즐기듯 묘사된다. 방송에선 끝없이 미성년자 아이돌을 성적으로 소비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스타들은 표현의 자유라 반박하고, 대중들도 '그것과 이것은 달라, 프로불편러들!'이라 외친다. 사회가 어린아이들은 섹시하고 성숙하길 바라고, 어른들은 어리고 귀엽길 바라는데 그저 문화 차이라 말한다. 


이렇듯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성의식'은 단순히 N번방의 운영자들과 회원들을 잡아들인다고 바뀌지 않는다. 사회와 대중들 스스로가 아동청소년의 성적 대상화를 조장하는 분위기에 민감해져야 한다. 그것과 이것은 다르지 않다. 이것이 있기에 보다 쉽게 그것으로 가는 것이다. N번방을 비난하면서 아이의 입술을 클로즈업 하는 광고에는 박수를 친다면, 위선이고 모순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방관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차원의 (넓은 의미의) 성교육이 절실하다. 미성년자는 물론이요, 모든 개개인을 포함한다. 자신은 해당사항이 없다 쉽게 단언하지 말자. 잘못된 성관념을 가진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


성별을 떠나서.


성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를 답답하게 하는 것이 있다. 성별로 파벌을 나누어 싸우는 것이다. 성범죄의 가해자가 주로 남성이고 피해자가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그동안 억눌려 왔던 여성들의 분노와 적대감은 나 역시 이해하는 바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초점을 성별에 두어선 안된다. 성범죄는 성별, 나이, 성 정체성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발생할 수 있다. 남자아이도 충분히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사례가 많다. 가해자는 성인 여성이 될 수 도, 성인 남성이 될 수도, 심지어 동급의 학생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피해 아동이 남성으로 태어났단 이유만으로 배제하고 외면할 것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배우는 것, 그것이 모든 성교육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좀 더 성숙한 의식으로 N번방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범죄자를 남자나 여자가 아닌 그냥 범죄자로 보고, 피해자를 일탈계나 스폰 알바를 한 문란한 여학생이 아닌 그냥 피해자로 봐야 맞다. 모든 남자는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것도 잘못된 성관념이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은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잘못된 성관념이다. 남성을 위한, 여성을 위한, 또는 제3의 성을 위한 성교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성별이기 전에 존엄성을 가지는 인간이다. 그 존엄성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성교육의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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