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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 Apr 28. 2020

심장이 말했다 1편

독단적이고 변변찮은 단편소설.

흡사 처녀귀신과도 같은 행색의 여자가 경찰, 선영의 부축을 받아 경찰서로 들어섰다. 선영은 여자를 푹 꺼진 소파에 앉힌 뒤 담요를 가져와 그녀의 몸에 둘러주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던 인택은 그사이 그녀의 행색을 빠르게 훑고 선영에게 물었다.


“가정폭력?”

“그런가봐요. 길에서 배회하시는 걸 모셔왔어요.”


피가 묻은 옷가지와 몸싸움을 한 듯한 흔적, 급히 도망쳐 나왔는지 주인을 잃고 맨발이 되버린 왼발까지. 경험 많은 형사 인택에게 이런 추리쯤은 일도 아니었다. 


“다른 애들은?”


인택이 옆자리에 앉은 후배, 제형에게 물었다.


“아직 순찰 중일걸요.”


인택은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여자에게 갔다. 본격적으로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서 였다.


“아주머니,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사고 경위서 한 장 쓰고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요즘에 가정폭력은 친고죄가 아니라서 어차피 다 처벌 가능하거든요? 접근금지 명령까지 신청하면 신변보호도 될거고요.”


여자는 물 컵을 건네받았지만 마시진 않았다. 대답도 없었다. 그때 선영의 무전기로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인사건 발생, **구 **지역 폐주차장에서 살인으로 보이는 시신 한 구 발견. 지원 바란다, 오버.’


무전을 받는 선영의 표정이 심상찮다. 인택도 낌새를 알아채고 선영을 보는데, 선영이 잠시만요- 라는 말을 남기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경찰서를 나갔다. 잠시 후 다시 들어온 선영은 인택을 조용히 부르더니 휴대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피해자로 보이는 시신 한 구와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신발 하나. 인택은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보라색에 빨간 줄무늬의 운동화. 누가 봐도 경찰서 소파에 앉아있는 여성의 오른쪽 신발과 같은 것이었다.


“용의자 서에 있다고 애들한테 무전하고, 조서는 내가 맡아야겠다.”

“네. 그럼 전 지원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묵비권을 행사하시는 게 본인에게 더 불리할 수 도 있어요."


인택의 말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여자는, 서에 발을 들인 이래 입도 뻥끗하지 않고 있었다. 인택은 고까운 눈길로 여자를 보며 말했다.


"국선 변호사 신청서류 드려요?"


여전히 묵묵부답인 여자였다. 그 사이 제형이 갓 인쇄된 따끈따끈한 종이를 들고 왔다. 여자의 신상정보가 담긴 서류였다. 


"이름 김연숙, 나이는 54세, 등본상 거주지는 여기가 아니라 ** 이네요. 특이사항으로는 6개월간 정신병원 입소한 적이 있는데, 일주일 전 퇴원했답니다. 범죄이력은 없고요."

"피해자 쪽 신원확인은?"

“피해자 몸에서 휴대전화를 확보하긴 했는데, 넘어질 때 깨진건지 상태가 영 별로라... 복원하는데 좀 걸린답니다.”


정신질환자라... 그럼 그렇지. 돌팔이 의사들이 미친년 하나 퇴원시킨 바람에, 애먼 사람 하나 죽었군. 이번에는 심신미약 핑계로 또 얼마나 감형 받으려나? 인택은 속으로 생각하며 감정을 실어 자판을 탕탕! 두드렸다. 


'정신질환에 의한 살인'


인택은 제형에게 보호자와 사회복지과에 연락을 해보라 시켰다. 그리고 생산성 없는 심문을 계속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신 거죠? 본인 집하고도 멀리 떨어져 있고, 입원해 있던 병원하고도 꽤 거리가 있는 곳인데."

"..."

"피의자는 아무런 대답과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머리에서 들리는 어떤 목소리가 죽이라고 시키던가요?"


인택은 저도 모르게 비아냥댄 것에 아차 싶어, 녹음기를 곁눈질 했다. 그리고 괜히 헛기침을 했다.


"피의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때 사복과에 연락하기 위해 나갔던 제형이 다시 심문실 문을 노크했다. 얼굴이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선배님 잠시만."


제형을 따라 심문실을 나온 인택이 지체없이 물었다.


"보호자 연락 됐어?"

"아뇨, 서류상 가족은 모두 사망한 걸로 나옵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뭔데?"

"방금 감식 반에서 연락이 왔는데, 사체의 심장이 없답니다. 단순히 찌른 게 아니라 도려냈다고..."

"뭐? 다른 장기들은?"

"멀쩡합니다. 사인도 뭐, 자세한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쇼크사로 의심된답니다. 처음부터 심장을 노린 것 처럼 보인다고..."


인택은 고개를 돌려 검은 창 너머 심문실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았다. 멍한 눈빛에는 전에 없던 살기가 보였다. 우발적, 불특정 대상 범죄가 아니었다. 심장을 도려낸 행위에는 감정이 담겨있다. 그것도 아주 강한. 인택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정폭력인 줄 알았던 사건이, 정신질환에 의한 우발적 살인인 줄 알았던 사건이, 이제는 계획범죄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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