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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Park Sep 11. 2023

떨어질까 조심하라 (히 3:12-4:2)

마지막까지 깨어있음으로 구원함을 얻으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 하나님께 부름 받은 한 백성이었지만, 그들은 실상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과 따르지 않는 자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자들과 광야에 남겨진 자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먹는 자리에 머무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선택받고 그 말씀을 들으나, 마음이 강퍅하여 그것을 거절하고 미워한다면, 오늘 본문 말씀처럼 그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면, 모세는 구원받지 못한 것인가? 우리는 먼저 구원에 대한 정의를 올바로 내려야 합니다. 구원에는 과정이 있습니다. 첫째는 중생, 둘째는 칭의, 그리고 셋째는 성화입니다. 중생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옷을 덧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죄인으로서 우리의 행위가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법적 선포를 합니다. 이것이 칭의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 이제 의인이 된 죄인은 자신의 삶에서 드러나는 죄성을 없애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리스도가 형상을 닮아가게 되며 이 과정을 성화라고 합니다. 이 세 과정이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하나님의 안식'을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나라, 곧 구원 자체로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선택받은 자들이 그들이 가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중생과 칭의는 그 앞뒤를 다투기 힘들 만큼 비슷한 시기에, 그리고 여러 번이 아닌 인생에서 한 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화는 회심 이후의 우리 삶의 전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말씀에서 떠나지 않도록 서로를 믿음 안에서 격려해야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3:12-13) 하나님께서 떨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붙어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바울도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 그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옳도다 저희는(이스라엘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 11:20-21). 이처럼 우리는 내가 과거에 회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상태에서 멈추는 자가 되지 말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죄를 미워하는 거룩한 삶을 살며 구원을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저와 함께 옆에서 세례를 받았던 나이가 저보다 조금 더 많았던 형제가 있었습니다. 세례 교육을 받고 잠깐 시간이 나서 대화를 했는데, 저보고 천주교 세례를 받았냐고 물어봤습니다. 당연히 아니라고 했는데, 자신은 천주교와 불교 세례를 군대에서 전부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종교든 세례만 받으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세례를 받은 그 형제는 그 이후에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세례는 혼례 행사와 같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신랑과 신부가 얼굴도 안 보고 사는데, 결혼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삶에서 한 번 세례를 받는 것,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것, 심지어 매일마다 말씀을 묵상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믿음의 삶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 허공에 울리는 꽹과리 소리처럼 아무 의미 없는 행위가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삶이 습관이 되면, 정작 하나님께서 부르는 그 순간에 그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며, 알아듣는다 할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천국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열 처녀는 모두 자신의 신랑이 곧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예상 시간에 맞게 도착하지 않자 열 처녀 모두 졸며 잠에 빠져 버렸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신랑을 맞으러 가는데, 그들 중 다섯은 슬기롭게 등에 쓸 기름을 미리 준비해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미련한 자 다섯은 미리 준비하지 못해 결국 신랑을 만나지도 못하고 혼인 잔치의 문을 통과하지도 못했습니다. 신랑이 올 것을 알고 있던 여인 열명 중 반은 잔치에 참여하고 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믿음으로 준비된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잔치에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닫힌 문을 열어달라고, 나도 신부라고 문을 두드렸을 때,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였노라 하였느니라'(마 25:1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이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회심과 칭의에서 멈추어 버린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어떻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회심과 칭의를 통해 구원이 마침표를 찍는다면, 구원 이후에 우리가 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히브리서 저자가 우리에게 전한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떨어질까 염려하라'.


성경에 등장하는 자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은사를 누렸음에도 세상을 사랑하여 교회와 형제들을 떠나는 자들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그들의 회개를 '일시적 회개'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머리로 깨닫고 죄에 대해 인지는 하지만, 심령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는 자들이 한 회개를 지칭합니다. 요한 일서는 이러한 자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라'(요일 2:19). 요한에 말을 조금 더 풀어보자면,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간 것은 처음부터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들이 얻은 구원이 진짜가 아닌 것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우리의 중생과 칭의가 진정으로 일어난다면, 성화는 그것이 진실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곧 구원에서 이 세 과정은 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믿음의 소망을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있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완악한 마음으로는, 그래서 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말씀이 우리에게 결코 유익이 될 수 없습니다. (4:1-2 읽기) 3주간 우리는 히브리서 저자가 전한 믿음의 조언을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흘려 떠내려가지 않아야 합니다. 마귀의 끊임없는 시선분산으로 우리의 목적지를 잃지 않기 위해 믿음으로 우리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집에 있는 종 하나를 봐도 그 집의 아들과 그 집의 주인을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당면한 모든 상황 속에서 그 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떨어질까 염려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남은 삶을 통해 그 구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화의 과정을 통해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구원은 아직 완성이 아니라 진행형이며, 말씀을 나의 믿음과 결합하는 과정이 없다면 우리도 영적으로 잠들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에 대한 세 가지 충고를 마음에 잘 새겨 어두운 세상에서 진정한 빛을 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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