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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Park Sep 14. 2023

떠내려가지 말라 (히브리서 2:1-4)

죄를 따라 떠내려가지 말고 복음을 붙잡고  굳건히 서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사람에게 전해준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게 될 것을 말씀하셨고,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떠날 것을 명령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을 믿음으로 받았으나,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소돔과 고모라를 서둘러 떠났으나, 떠나는 중에 뒤를 돌아본 그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천사가 전해준 말을 듣고 이를 순종하지 않으면 이에 대한 보응이 따르게 됩니다. 2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절 읽기) 히브리서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천사를 통해 얻는 구원을 '작은 구원'으로 묘사합니다. 이어지는 3절에서 '큰 구원'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3절 읽기) 천사가 전해준 명령을 따르는 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생명을 구하는 '작은 구원'입니다. 이러한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에 따르는 보응을 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전해준 명령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큰 구원'입니다. 작은 구원이 우리의 삶에서 귀하다면, 큰 구원을 우리가 어떻게 등한시 여길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천사를 인용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를 설명하고 그의 말씀과 명령의 중요성을 천사와 대비하여 설명합니다. 저는 오늘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을 지키는 일 세 가지 방법 대해 여러분들과 3주에 걸쳐 하나씩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보는 첫째는 흘러 떠내려가지 않아야 합니다. 2장 1절을 읽겠습니다. (1절 읽기)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인간이 저지른 범죄가 우리 육신에 죽음을 가져왔고, 그 죽음이 유전되어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습니다. 문제는 죽음이 단지 육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에도 멸망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죄의 유전자'를 따라 죄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끌립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선한 양심을 주셨지만 그것은 자신이 죄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도구일 뿐이지, 자신의 욕심을 이겨내고 선한 행위를 이루었다고 그것을 선하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선물을 주는 것과 사랑하지 않지만 선물을 주는 것이 좋은 일이어서 선물을 주는 것은 행위적인 면에서는 동일할지 몰라도 중심의 문제로 볼 때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심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2-23) 히브리서 2장 1절은 우리가 이처럼 태생적으로 죄를 사랑하므로 자신도 모르게 죄가 흐르게 하는 방향으로 떠내려 가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짧게 말하면, 가만히 있으면 반드시 떠내려 갑니다. 떠내려가는 대상은 가만히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밀어내는 힘이 존재합니다. 그 힘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우리의 죄성입니다.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다 자신이 떠내려 가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자신이 걸어 들어온 해변으로부터 멀어졌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있는 배가 자신이 올바르게 목적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역시 단순합니다. 나침판을 통해 방향을 확인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에 휩쓸려 떠네로 가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 역시 간단합니다. 말씀에 더욱 집중하는 것입니다.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새로운 말씀과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들은 것에 전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사도 시대, 초대교회 시대에서 마귀가 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듣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는 시대였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때리고 심지어 죽이면서 그들의 입과 귀를 막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그들의 물리적 수단을 완전히 무효화할 만큼 커다란 능력과 기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고무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마귀가 여전히 우리들의 입을 막고 귀를 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일을 못하게 합니까? 그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억압을 주며 생명을 위협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놀이를 하고 있는 우리가 해변을 보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먼 항해를 하는 배 가운데서 나침판을 빼앗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우리가 물놀이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승선하고 있는 배를 멋지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변을 바라보는 시선을 빼앗고, 나침판을 볼 시간을 빼앗습니다. 우리는 해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해답을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해서, 우리가 담당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 더 이상 그 해답을 볼 필요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생명을 사랑하고 인생을 지혜롭게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천국으로 항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을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누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인생을 행복하게 누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벌고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은 삶의 이치이지만, 돈을 벌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녀에게 눈이 멀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목적을 분명히 하십시오. 우리는 길어야 100년을 항해하는 천국이 목적지인 배를 타고 항해하는 중입니다. 배가 천국으로 가는 수단에 불과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천국으로 가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배가 너무 좋습니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즐겁고 낭만적입니다. 당장 눈앞에 나침판을 두고도 방향을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탄 배, 내가 떠 있는 바다가 더 좋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재는, disturabnce 방해, 둘째는 distraction 시선분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는 마귀의 방해 공작에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가나안 땅을 앞두고 그 땅의 아름다움을 실제로 보고 난 뒤에 그의 마음에는 가나안 땅이 들어왔습니다. 모세는 이미 하나님의 거룩함을 올바로 드러내지 못한 죄목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도 그 땅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광야에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했던 모세가 막상 가나안땅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삶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방해 공작을 거의 경험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 손에 있는 나침판을 거의 빼앗아가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부족해’. ‘넌 지금 행복하지 않아’, ‘넌 하나님 말고 다른 필요한 것이 있어’, ’ 주변 좀 봐. 누가 너처럼 사니? 조금 더 노력하고 힘을 내서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봐 ‘. 모두 distraction 시선분산입니다. 말씀을 묵상할 시간을 빼앗고, 감사하는 마음을 불만으로 채우고, 천국으로 한 발자국 더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한 뼘 더 깊이 빠지게 만드는 모든 것이 시선분산입니다. 1절은 말합니다.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


우리는 지금도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해변에 도착해도 1시간 뒤에 다시 돌아보면 또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돌이키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두 번은 더 훌륭합니다. 그래서 회개는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확인하는 일은 필요 없습니다. 차라리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확인하고 회개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우리를 밀어내는 물살이 무겁고 빠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능력과 은혜는 이것을 넉넉히 이길 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서 날마다 우리의 위치를 굳건히 사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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