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앞의 작은 것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수8:30-35)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이스라엘 자손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그 위에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그 곳에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거류민도 언약궤 좌우에 서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제사장들 앞에 섰는데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를 따라 모든 율법의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들과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아이성 두 번째 전투는, 규모로만 보면 여리고성에 비해 훨씬 작은 전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전투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리고성을 점령한 뒤의 이야기는 상당히 짧은 데 반해, 아이성을 점령한 이후의 이야기는 훨씬 더 길고 자세하게 다룹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오늘 아이성 두 번째 전투에서 눈여겨 봐야 할 세 가지 특징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전쟁의 크기가 아니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중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여리고성 전투는 이스라엘에게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성벽은 무너져내렸고, 손 하나 대지 않은 채 성을 점령했습니다. 문제는 성을 점령한 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무뎌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죄가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그로인해 아이성 첫 전투에서 완전한 패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리고성에서의 승리는 겉보기에 위대해 보였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영성은 그에 반해 보잘 것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성의 두 번째 전투와 승리 이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잊지 않기 위해 더욱 분주해집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돌에 새기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낭독합니다.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모두 빠짐없이 읽습니다. 이는 전쟁이 끝났지만,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그들의 다짐과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필요에 따라 찾습니다. 학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종종 급하게 휴지를 찾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학원에 휴지가 없으면 나가서 구해서라도 줘야 합니다. 휴지를 받으면 안도의 표정을 지으면 화장실로 급히 갑니다. 그런데 이런 학생들 중 많은 경우가 화장실에 휴지를 두고 옵니다.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애타게 찾던 화장지였는데, 막상 볼일을 보고 나니 휴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필요를 다했기 때문에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에서도 하나님을 휴지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의지하지만,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을 그 자리에 두고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여리고성의 승리와 아이성의 승리는 출발점이 모두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성의 승리와 아이성의 승리의 결승점은 전혀 다릅니다. 여리고성은 하나님을 휴지처럼 두고 떠난 자리였으나, 아이성은 승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저 하나의 ‘도움‘으로 소비하지 않고, 삶의 중심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이 전투의 첫 번째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승리 이후의 태도가 분명히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두 번째 특징은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실패가 얼마나 중요한 교훈이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이성과의 첫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여리고성을 너무 쉽게 점령한 경험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정도 성이라면”이라는 판단으로 하나님께 먼저 묻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병력만 보내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패배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전략 실패가 아니라, 경험을 하나님보다 앞세운 신앙의 실패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전투에서는 상황이 정반대로 흘러갑니다. 이번에는 아이 왕이 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는 첫 번째 전투의 승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도망쳤던 기억, 그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후퇴하는 척 물러나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리해서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받은 지시에 따라 준비한 함정이습니다. 성읍 뒤에 매복해 있던 이스라엘 군대가 성을 점령하고, 아이 왕과 군대는 진퇴양난에 빠져 결국 몰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한 번의 실패를 통해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고, 아이성은 성공의 기억에 사로잡혀 동일한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이 전투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줍니다. 실패는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허락된 자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첫 패배는 죄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실패를 통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태도를 바꾸셨습니다. 하나님께 묻는 공동체로, 말씀에 귀 기울이는 공동체로 다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두 번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전투는, 비록 규모는 작은 전투였지만, 앞서 치른 여리고성 전투보다 더 의미 있는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습관적으로 내가 의지하는 경험을 꺾기 위해 실패와 패배라는 섭리를 예비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고통은 마치 하나님이 나를 유기한 것 처럼 느껴질 만큼 힘들고 좌절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과정을 반드시 믿음으로 승화하여 회개하고 말씀의 자리로 자신의 중심을 옮기는 과정을 거쳐가야 합니다. 아이성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기 위해 서 있는 성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무너지게 하기 위해 세워둔 성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내 앞에 있는 거대한 산 역시 믿음으로 반드시 정복될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눈을 들어 산을 보면 넘을 수 없을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고개를 들면,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옵니다.
아이성 두 번째 전투에서 발견하는 마지막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은 언제나 기적적인 방식으로만 일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리고성 전투는 누가 봐도 기적입니다. 여리고성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전투 방식을 명하셨고, 그 모든 말씀에 순종했을 때 성은 무너졌습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전쟁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개인으로 이루어진 전쟁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아이성 전투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매우 세밀하고 치밀한 전략을 가르쳐 주십니다. 매복과 기만전술을 사용하게 하시고, 전쟁의 모든 과정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십니다. 같은 하나님이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신 것입니다. 이 두 전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두 가지 방식을 보게 됩니다. 첫째, 불가능을 명령하시고 기적으로 개입하시는 방식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이 그렇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에게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자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음식에 대해 예수님께 의견을 구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지금 당장 나가서 이들이 먹을 것을 사 올 수도 없는데, 지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말은 상당히 황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을 명하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잇던 한 아이의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를 하늘에 축사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에 잇던 모든 사람들이 넉넉히 먹고도 남아 수 많은 광주리를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며 기적적인 체험을 원하지만, 정작 기적의 자리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 자리로 가는 것이 그 자체로서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수천명의 청중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러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적은 반드시 그 자리로 나아가야만 일어납니다. 우리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곳을 버리고 부담스럽고 감당할 수 없는 여리고성으로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제 설교를 들으면 마음이 편합니까? 그 반대이지 않습니까? 제가 호주에서 설교할 때 가장 많이 받았던 피드백은 설교가 참 좋지만 들으면 마음에 부담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대형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이 왕왕 이런 말들을 주고 받는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부담갖는 설교는 하지 마. 그런 설교 하면 성도들 다 떠나.” 그런데 부담이 없는 설교가 정말 설교가 될 수 있을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담을 지기 싫어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세상에 감추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것도 모르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인 것을 밝히게 되면 세상에서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람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는 부담감,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타인을 위해 써야 한다는 부담감,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나를 해하는 원수에게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모든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떠한 부담감도 내가 아무런 값 없이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로 인한 은혜의 부담감을 넘어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호주에서 청년부를 담당할 때, 아무런 대가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피땀흘려가며 노력하는 청년들을 보고 강도사로서 사례금을 받는 제 삶에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이 사례금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살림교회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사람도 적고 헌금도 적은 교회라고 여기며 교회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저는 물질 때문에 서기 어려운 교회와 이웃들을 보며 마음의 부담을 느낍니다. 우리가 너무 작고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손에 아무것도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을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일하는 첫번째 방식이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두번째는 치밀한 계획과 노력에 순풍을 더해 주시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자리에서는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의 모든 과정에서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그것은 전쟁 이후에 더욱 도드라집니다. 그는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고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낭독했습니다. 승리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오리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목적지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요즘 코스피가 급등한다는데, 혹시 주식에 성공해서 부자가된 모습이 목적지가 되지는 않았습니까? 아이성을 점령하고 담담하게 말씀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여호수아의 모습은 그가 향하고 있는 목적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세상적 노력과 그리스도인의 노력은 겉으로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이처럼 모든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성은 쉽게 점령할 수 있어 보이는 작은 성이었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그것을 육신의 전쟁으로 치루지 않고 영적 전쟁으로 치뤄 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에 말씀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담는 습관을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호주에서 저희 장인어르신이 운전을 하다 실수로 전봇대를 박아 쓰러뜨린 일이 있었습니다. 얼굴도 다치시고 차도 망가지고 전봇대 수리비도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큰 사고 속에서도 장모님은 장인어르신께 몸이 멀쩡하니 괜찮다고,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담담하게 넘어가셨습니다. 보면서 “아, 부부는 이렇게 큰 일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는거구나.”하며 감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장모님이 장인어르신과 한 번 크게 다투신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일이었을까요? 장인어르신이 밥상에서 고기 반찬을 많이 먹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많은 부부 관계가 큰 일에서는 잘 대처하지만, 사사로운 일에서는 무너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여리고성에서 보다 아이성에서 더 주의해야 합니다. 가볍다고 여기는 일, 작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아이성 두번 째 전투를 통해 배운 세 가지 교훈을 기억하며 작은 순종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