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무엇인가을 배우고 싶은 건지도
엄마가 된 지금 나는 종종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아이들이 오버랩되기도 하고
다르지만 또 같은 모습의 엄마의 모습이 내게서 나오기도 한다. 긍정적인 모습도 부정적인 모습도 모두 나에게서 엄마를 발견한다.
엄마는 시골 동네에서 가장 부유하게 자라 아빠를 만났다. 일한번 안 해보고 평생 가정주부로만 사셨는데 귀촌한 지금도 집안일이 자기 적성에 딱 맞다고 말하는 엄마는 진정 엄마다.
나는 어렸을 적에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성향의 아이 었다.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것 같고 쉽게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그림 그리기를 참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좋아했다. 말보다 그림이 편했던 내게 엄마는 한 번도 말이 느리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나아가 엄마는 그림 그리는 나의 모습을 칭찬하고 적극 권장했다. 덕분에 그림은 나의 무기가 되고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엄마는 참 칭찬을 잘했다. 돌아보면 나도 문제가 참 많았을 텐데… 많은 문제속에서 칭찬할 부분을 찾아 꼭찝어 칭찬해 주셨다.이렇듯 문제가 많더라도 잘하는 한 가지 찾아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엄마
어른이 되고 보니 그렇게 자란 사람이 많지 않고 그 부분이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들의 드러난 문제가 먼저 보이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엄마는 내게 공부하란 말을 안 했다.
80년대 경제가 발전하고 IMF도 겪었던 어렵고도 성장했던 시대에 공부를 필수였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정말 공부하라는 말을 잘 안 했다.(몇 번 했을지도 모르겠다)공부를 그다지 잘하진 못했지만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의 점수차가 심했다. 즉 내가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한 것이다. 시험성적표를 보여줘도 점수로 혼낸 적이 없다.
그림에 소질이 보여서 그랬는지, 오빠가 공부를 잘해서 나에겐 관심이 없었는지도 (기대를 안 했는지도 )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공부에 대한 압박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진 않았다. 물론 적절히, 나름 나 자신 스스로 받은 스트레스는 있었겠지만 말이다.
극성맞은 엄마나 헬리콥터 맘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으로 자유를 많이 주고 경계선이 많이 없는 엄마를 부러워했던 친구들이 기억이 난다.
엄마는 왜 내게 공부하란 말을 하지 않았을까
덕분에 나는 공부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지금도 공부를 좋아하며 공부하고 살고 있다.
무엇이든 배우는 건 즐거운 일이다. 매달 중고서점에서 세 권의 책을 고르고 글 읽고 작업하는 일이 즐겁다.
아이들이 키우며 난 그때의 엄마를 떠올린다. 영원한 공부를 위해서 재촉하지 않았던 엄마의 기다림을
어쩌면 배움의 욕구를 막는 것은 지나친 압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내가 엄마처럼 아이들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 모든 게 불안한 코로나 시대에 아이들을 압박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엄마의 좋은 점을 닮아 아이들에게도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다짐하지만 현실 육아는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첫째 아들과 데이트를 가야겠다. 쪼아대서 미안한 엄마의 마음을 사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