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으로
공모전이든 개인 작업이든 일이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데드라인을 정해 놓는다. ‘반드시 해야만 해’와 ‘오늘은 넘어가자’라는 마음을 완전히 다르다. 데드라인이 있다는 것은 전자와 후자의 사잇길을 걷는다는 의미이다. 특히나 개인작업은 더더욱 후자의 선택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안데르센 공모전 등록을 위해 오랜만에 들어온 브런치에 여러 글과 글 사이에서 놀다가 잠들지 못하고 문득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간 어지간히도 바빴던 것이 그림책향에서 그림책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의 밤 시간은 쓰레기(우리는 그림책 콘티를 쓰레기라고 부른다) 와의 씨름하느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 육아, 공부, 그림… 에 글이 낄 자리가 없었다.
너무 힘든 날이면 다자녀 카페에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사람 사는 글을 읽기도 하고 넷플릭스를 보며 빈둥거리기도 했다. (쓰다 보니 시간 없다고 투덜거릴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이제 막 1학기 과제를 끝내고 메일의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그동안 약 30편이 넘는 쓰레기(그림책 콘티)를 만들어 냈다. (정확히는 34편)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쓰레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어느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것들이다. 출판된 것도 작업을 시작한 것도 없지만 말이다. 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으로 이제 나는 막 흙을 파고 씨앗을 뿌렸다.
나는 이 작업들이 참으로 소중한 마음이 든다. 나의 수고로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꽃이 피어나지 않아도 결실이 맺지 않아도 괜찮다. 산책의 일부분처럼 천천히 한 걸음씩 걷고, 쉬고 다시 걷고 나의 일에 충실하는 것 까지가 나의 일이다. 그간 열심히 그려낸 쓰레기들은 창작 그림책으로 순수 창작물로써 돈을 받고 일하는 일러스트 작업과는 차이가 있다.
이제 2학기가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더미북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다. 씨앗에 물을 주고 가지치기를 하고 덧붙이고 잇고 열매가 맺기까지의 과정들이 앞으로 남아있다. 하나의 집을 짓는 마음으로, 켜켜이 켜켜이 한 장 한 장 만들어나가면 하나의 그림책이 될 것이다.
다만 나는 그 길에 나 자신이게 먼저 정직하고 진솔한 이미지를 담고 내 마음을 담고 삶을 담고자 한다.
그렇게 십 년 이십 년.. 살다 보면, 아니 살고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