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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Park Jul 11. 2020

나도 작가인가?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걷는 쉽지 않은 길

2012년 23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했다. 내가 잘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림 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내가 더 잘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랑에 빠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금방 사랑에 빠졌고 금방 결혼을 하게 됐다. 이상하게 엄마는 지금의 남편을 보고 반대도 안 하고 바로 결혼을 시켰는데, 내가 못 미더워여서 였는지 아니면 그만큼 남편이 믿음직스러워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나는 지금 네 자녀의 엄마로 살고 있다.


아무튼 결혼은 했고, 내가 잘하는 것을 해보고자 했다. 첫째 아기 임신 전부터 조금씩 그려왔던 것이 바로 블루 스토리다. 요정 같은 작은 캐릭터 블루가 여러 곤충들을 만나는 여정을 그린 동화인데 아직도 완성을 못하고 습작으로 남아있다. 그때 즈음부터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했고 친구가 외주를 받으려면 산 그림 이란 일러스트레이터 그룹에 등록을 해야 한다고 해서 등록도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외부에서 제안이 들어올 때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도 나에게 작가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명함에도 내 이름 앞에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새겼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꾀나 멋져 보였고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도 몰랐다. 내가 네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겪어 될 줄은. 블루 스토리를 그릴 때부터 나는 임신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출산, 그리고 임신 그리고 출산 그리고 임신 그리고 출산을 하게 되었다. 즉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엄마의 삶을 살고 있고 살아야 하는데 작가의 삶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간과의 싸움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시간이 없었다. 보통 “시간이 없어서 못해”.라고 하는데 아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은 순 거짓말이다. 아이를 낳을수록 아이를 키우는 일이 수월해지긴 했지만 아이들은 내게서 절대적인 관심은 요구했다. 아이는 내게 주어진 시간 24시간 중 자는 시간 빼고 엄마를 찾았다. 잘 때도 가끔 깨서 엄마 존재를 확인하는 생존본능에 충실한 야생의 크리처들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아이에게 나는 맞춰져 갔다. 하지만 아이에게 집중하면 할수록 나는 힘이 들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흔히 겪는 산후우울증에 걸렸을 정도이다  처음이라 몰랐고 낯설었고 매일을 울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아닌 나로 살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아이를 재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가란, 작업이 일이 되는 사람인데 일을 할 시간이 없는 현실이 아이를 낳을수록 커져갔다. 더군다나 둘째 낳고 나서부터 한국에 오게 되면서 그림을 가르치는 일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댁 베이스에서 살게 되면서 적절한 며느리의 노릇, 엄마의 삶, 일의 균형을 유지하며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려야 했다. 누군가 이렇게까지 그림으로 먹고살고자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글쎄, 작가란 이름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 일까. 나 자신 스스로가 작가로 이름을 붙여줄 수 없어서. 작업량이 하루 최대 한 시간 남짓이니까.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으니까 작가로는 살아야겠는데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선 합법적 명분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그려야만 하는 상황 그림으로 수익 창출)

왜냐하면 어르신들에겐 그림 그리는 일은 취미생활 정도로만 보이니까, 몰래몰래 그림을 그리고 작업물을 쌓아나가다 보면 책도 내고 볼로냐(세계적인 그림책 국제 컴페티션) 도 나가고 상도 받고 하게 되겠지. 꿈같은 이야기지만 엄마가 꿈꾸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않나. 남들과 비교했을 땐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적어 보이겠지만 서로의 시간은 다르고 작가의 길은 한길이니 그저 내 발끝만 보고 한 걸음씩 걸어 나갈 수밖에,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게임으로 치면 지는 게임에서 시간은 없지만 시간을 믿고 연륜을 믿고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는 거다.

앞으로도 내 앞에 주어진 많은 실패들이 있다. 원고 투고, 많은 공모전들. 1등을 위해 성공하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림은 쌓이고 실패는 연약함에 굳은살을 돋게 한다. 물론 가끔은 바위에 계란치기 같다는 허망함과 우울감이 나를 찾아와 누룰순 있겠지만 나는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결국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는 순간이 있을 테니까. 엄마로 사는 시간이 아깝다는 투정이 아니다. 엄마로 충분히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작가의 길은 분명 더 가치 있고 의미가 있다.

아이들에겐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떤가. 네 명의 아이들에겐 그냥 그렇게 나라는 엄마를 받아들이면 그뿐. 좋은 엄마를 결정짓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니까. 불완전한 작가의 길을 선택한 엄마를 아이들이 언제간 응원 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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