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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Park Jul 26. 2020

니 재능이 아까워서 그러지

경단녀 4남매 엄마가 삶을 살아내는 생존방법


"니 재능이 아까워서 그러지”

얼마 전 디자인 회사를 다니는 친구와 카톡 대화를 나누다가 들었던 말. 왜 전시는 안 하는지 업체만 잘 잡으면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번다며 애들 다 키우고 나면 꼭 다시 시작하라고 격려 아닌 격려를 받았다.

벌써 과장 딱지를 떼고 부장이 된 친구는 회사에서 대학원까지 보내준다고 한다.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남녀의 차이인가, 아니면 결혼과 육아를 선택한 나의 개인의 차이인가.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 지금 멈춰져 있다는 말같이 느껴졌다. 결혼과 육아는 멈춤을 뜻하는 것일까. 아이를 키우며 겪는 공백기를 모르며 살다가 이렇게 들으니 마치 내가 뒤처져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난 시작을 한 적이 없다.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육아를 하며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멈춰짐의 불안은 당연한 듯 내게도 따라왔다.




엄마가 되면 겪는 경력단절은 당연하지만 사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주질 않는다. 작가의 경우에도 그렇다. 작업시간이 여유롭고 24시간을 자기 주도하에 컨트롤이 가능한 미혼의 많은 가능성 있는 작가들이 많은데 애 넷 딸린 시간 없는 작가를 왜 쓰겠는가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 불안과 현실에 좌절하며 실패자의 모습으로 상황이 다른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갈 것인가.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매일을 다짐하지만 불안을 그래도 나를 찾아온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1분만 내리기만 해도 재능 있고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수도 없이 올라온다. 비교의 노출 속에 살아가는 시대. 비교의 노출 속에 비교하지 않고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생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럼 점에선 육아를 하며 바삐 사는 나의 삶이 한편으론 고맙게 느껴진다. 나의 생존의 법은 다음과 같다. 세상과는 조금 발걸음을 두고 나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 아이에게만 집중하면 내가 없어지니 적절히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 뉴스를 보지 않는 것 (인터넷 댓글은 더더욱 보지 않는다.) 주변의 이웃 아줌마들과 조금의 거리를 두는 것 (육아 관련 정보 수집을 하지 않는 것), 하루 일과를 펜으로 직접 쓰는 것, 마지막으로 계획한 일을 실행하지 못한 나 스스로를 이해해 주는 것.



적어보니 원시인 같고 자체 거리두기 같지만 실제로 도움이 된다. 내 성향 덕분인지 아니면 육아에 지쳐서인지 모르겠지만 일상을 유지하며 혼자가 되는 이 시간이 좋다. 골방에 들어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내 일을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보단 그림으로 말하는 게 더 편하지만 요즘은 글을 더 많이 쓰려고 한다. 중간중간 육아 중에도 메모로 생각을 남길 수 있어서 좀 더 편리하달까. 그림은 에너지가 좀 더 소비되고 오롯이 혼자가 돼야만 가능하다. 아이들이 크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코로나 19로 힘든 시기, 매일 뉴스로 확진자를 확인하던 도중, 뉴스를 보면 볼수록 우울감에 젖는 나를 발견하고 그 후로는 뉴스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식물을 사기 시작했다. 새순이 올라오고 그 생명을 보는 것이 내게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꼭 보지 않더라도 큰 뉴스거리가 생기면 주변에서 꼭 알려준다. 뉴스 봤냐며



이웃은 언제나 좋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존재임은 분명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끝도 없다. 온갖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좋은 육아 용품과 정보는 파면 팔수록 끊임없이 나온다. 넷 키우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그런지 필수적인 육 아템 빼고는 용품은 많지 않은 편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보단 하루를 돌아보며 그날 내가 아이를 사랑했는지 실수한 표현이 있지 않았는지 감정적으로 대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 낫다고 본다. 누가 어떤 학습지를 하는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 알면 알수록 내 아이가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불안만 엄습할 뿐이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상관없이 아이의 템포에 나의 템포를 맞추며 걷는 걸음을 걸으면 된다.


어느 수업 때 들었던 게 생각이 난다. 자신만의 육아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딱 한 가지만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싶냐고.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지 한마디로 요약해 보라고 했다. 쉽지 않았다. 아이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라고 썼다. 물론 아이들은 역시나 실패를 두려워한다. 아직 우리는 더 많이 실패해야 할 것 같다.


하루 일과를 펜으로 쓰는 것은 정말 대충 쓴다. 누굴 보여주위해 하는 것은 아니니까. 글씨를 예쁘게 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집안일 한 사소한 일도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빨래를 한 것, 건조기를 돌린 것, 옷 정리를 한 것, 화장실 청소를 한 것. 사소하지만 쓰고 나서 체크하면 내가 한 일에 뿌듯해지기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아니구나 깨닫게 된다. 그리고 수업한 일, 개인작업 한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적는다. 그리고 다음날 보면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2개의 프로젝트를 이번 달에 하려고 한다면 늘 1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그것보다 적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1개의 프로젝트라도 수행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예기치 못한 상황들- (아이들이 아프거나, 일이 생겼거나, 게으름을 피웠거나 ) 하루 일과 쓰는 일을 빠트릴 수도 있다. 그럴 땐 그냥 칸을 비워두거나 생각나는 대로 간단히 적는다. 그리고 그냥 받아들이고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



나는 오늘도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에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지만 아이들은 말을 안 듣는 게 정상이다. 못 키우면 어떤가 괜찮다. 내게 재능이 있지만 재능을 썩히면 어떤가 괜찮다. 다른 재능 있는 이가 일할 것이다. 불완전한 나와 불완전한 아이를 보며 나는 할 수 없지만 능력을 주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하루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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