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의 증거로 남은 엄마의 훈장
어릴 적 목욕탕에 가면 왜 아줌마들은 젖이 늘어나 있을까 뱃살이 힘이 없을까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 봉곳 솟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줌마는 아니겠거니 하며 지나쳤었는데. 넷째의 (마지막일 거라 바라며) 젖을 먹이며 문득 떠오른 이 글을 쓴다.
내가 관찰했던 목욕탕의 아줌마들은 적어도 한번 출산했거나 그 이상 출산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처진 젖가슴은 모양이 흉흉해 보일 진 모르겠으나 마치 영광의 훈장을 단것처럼 영광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하였다.
처진 젖가슴과 늘어난 젖꼭지는 고통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마치 소라껍데기가 바닷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파도를 맞으며 그 시간을 견뎌야만 바다의 음률을 간직하게 될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이 간직한 신비로움이 나의 늘어난 젖꼭지에도 있었다.
얼마나 많이 물고 얼마나 많이 물려야 봉곳이 솟은 가슴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꺼지고, 젖꼭지는 고무줄처럼 축 늘어날 수 있단 말인가. 혼자서 견디기엔 너무 힘든 시간, 쓰라렸고 피까지 났다가 딱지도 졌다가 껍데기도 생기고 마사지도 받았다가 감기처럼 몇 번의 유선염을 겪었을 기나긴 시간.
하지만 세상은 그 고통의 파도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저 당연히, 자연의 순리처럼 받아들여지고 감내해야 할 숙명처럼, 해야만 하는 숙제처럼 모든 엄마들에게 기준을 둔다. 왜 우리가 그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엄마는 “왜 그래야하지?”라는 질문이 생기기도 전에 파도에 휩쓸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