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
진정한 가나안 (출 4:10-17)
모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는 믿음이 있었는가? 그는 믿음이 있었으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신이 강했고,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기 위해선 보다 강력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신 다는 것, 그리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셨다는 데 있다. 모세에게 아론의 입술은 필요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아론을 붙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강제로 사역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온전하지 못하지만, 모세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신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세는 그 누구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바랐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날, 모세는 ‘드디어 그날이 왔다!’라며 속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 80의 모세는 기력이 쇠하고 사람들 앞에 내세울 것 없는 모습이었다. 결국 믿음과 소망은 있었으나,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한 노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할 때, 그는 초라한 자신이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될 것이라 여겼고, 하나님의 어떠한 명령과 위로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모세가 바라는 대로 자신을 대언해 줄 형, 아론을 세워주시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길을 떠난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한 모세를 두고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으나, 마찬가지로 불신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입술을 핑계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 입술을 지은 자가 누구인지 기억하라 말씀하셨다. 이것은 마치 시편 기자가 눈앞에 있는 높은 산을 보며 좌절했으나, 눈을 들어 그 위에 있는 하늘을 보며 그 산 조차 하나님께서 지은 것이라는 확신으로 용기를 얻는 것과 같다. 그러나 모세는 그러한 말씀에도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 않고 눈을 낮춰 자기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눈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를 기억하자. 그는 하나님께서 ‘오라’하는 말에 배를 나서 물을 걷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크게 불어오는 바람을 보며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러나 가라앉는 베드로를 손으로 잡아 올려 훌륭한 제자로 키워주신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도 모세의 부족함을 책망하지 않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셨다. 그에게 믿음직한 동역자 아론을,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지팡이를 주시며 그를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것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를 부를 때는 이미 그분의 계획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에 따라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그분은 우리의 부족함도 이해하며 충분한 시간과 능력으로 우리를 넉넉히 설득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지켜서 행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내 말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신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노력해서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하라는 것이 아니라, 후에 오게 될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을 말한다. 곧,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확신을 주며, 주님의 말씀을 행하도록 인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광야이든 가나안 땅이든 상관이 없게 된다. 내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분의 온전한 계획이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면, 모세는 실패한 인생이다. 그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고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세는 그 땅이 얼마나 그립고 아름다워 보였는지, 하나님께 다시 한번 그 땅에 들어갈 것을 요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 3:26). 비록 꾸지람이었지만, 모세는 이 말씀을 듣고 처음 하나님을 만난 날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자신의 능력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자신과 함께하는 하나님이 아닌,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세에게 가나안 땅은 필요하지 않다. 이미 진정한 가나안 땅, 곧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84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의 삶은, 비록 그 원인이 자신의 죄에 있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완전하고 아름다우며, 기쁨으로 가득하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사사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죄로 인해 미디안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듣고 하나님은 사사 기드온을 부르신다. 사자를 처음 만난 기드온은 지파 중 가장 낮은 아비의 집에 가장 작은 자인 자신을 찾아온 것을 매우 의아하게 여기며, 사자에게 자신을 부르는 것에 대한 표징을 구한다. 자신이 다시 예물을 가지고 와서 주 앞에 드릴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본 것이 헛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예물을 가지고 돌아오니 그 사자는 그대로 있었고, 시키는 대로 예물을 드리고 나니, 사자가 지팡이 끝으로 고기와 무교병을 살라버리고 떠난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다는 사실로 인해 두려움에 떠는 기드온을 안심시키고 그에게 아세라 상을 찍어내고 그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겁이 많은 기드온은 그 일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밤에 행한다. 후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함께 진을 치자, 여호와의 영이 임한 기드온은 나팔을 분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도와 무리들이 기드온과 함께하도록 하셨다. 그 모든 기적을 경험한 뒤에도 기드온은 양털 한 뭉치를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한다. 한 번은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도록, 한 번은 이슬이 양털에는 없고, 주변 땅은 젖도록 하는 시험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그 시험을 통해 기드온에게 확신을 주셨고, 겁쟁이 기드온은 300명의 군사로 십이만 명의 적군을 물리치는 승리를 거둔다. 두려움에 떨 수 있다. 믿음이 부족해서 발걸음을 떼지 못할 수도 있다. 마음에 치닫는 분노와 슬픔으로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 가운데서 주님의 곁을 떠나서는 안된다. 두려워도, 떨려도, 감정을 이겨낼 수 없을 때도 주님 앞에 반드시 머물러야 한다. 겁이 많던 기드온을 부를 때, 사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mighty warrior)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하나님은 당장 겁이 많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기드온을 본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모든 두려움 가운데 자신과 함께하며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기드온을 보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