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뿌리내린 씨앗

마태복음 13 :19-23

by Sue Park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 그 무리들은 말씀을 듣는 자들과 듣지 않는 자들로 나뉘어 있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장 처음에 언급되는 ‘길 가에 뿌려진 자’가 그들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믿고 싶어도, 믿을 상황에서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이 내리는 벌에 회개를 하기보다 이를 갈았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 앞에서 율법을 들이밀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실 때, 비유로 전하신 이유는 이처럼 주어도 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말씀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말씀을 깨달아 삶이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 말씀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의 비밀이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를 위한 것이라면, 오늘 우리 앞에 놓인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자들 가운데서도 그 말씀의 열매를 보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주의해야 한다. 돌밭에 뿌려진 씨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씨의 뿌리가 깊게 내려가지 못하는 데 있다. 잠깐 오는 고난에도 쉽게 그 뿌리가 뽑히는 것이다. 아내가 아보카도 씨앗을 물에 담가놓아 씨에서 뿌리가 어떻게 내려오는지 관찰하게 되었다. 물속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 사람의 힘으로는 쪼갤 수 없는 단단한 씨 중간이 쩍 갈라지고 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뿌리는 이처럼 강하지만, 이 뿌리가 온전히 내려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말씀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 말씀이 열매를 맺는 데 까지 걸리는 시간도 이처럼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말씀의 열매를 바라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많은 씨, 곧 얼마나 많은 양의 말씀을 읽는지 보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를 보자. 라반이 드라빔을 찾기 위해 야곱을 뒤쫓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라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 라반은 야곱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으며, 창세기 31장 53절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앞에서 맹세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창 31:53). 고로 문제는 라반의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일뿐이지, 나의 하나님은 아니었던 것이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있다는 존재를 아는 것으로는 믿음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후에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은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말씀하실 것이다(눅 13:26-27). 우리는 말씀을 받는 데 멈춰서는 안 된다. 그 뿌리가 내릴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고 그것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그렇게 뿌리내린 말씀이 결국 우리를 지키는 역사를 만들어 낸다.


야곱이 꿈에서 환상을 보고 그 환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가?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창 37:2). ‘요셉이 애급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급 온 땅을 순찰하니’(창 41:46). 비가 뭔지도 모르는 노아가 하나님을 약속을 받고 온 세상을 덮는 홍수를 경험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가?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 5:32).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창세기 7:6). 그들의 기다림 가운데 공통점은 그 기다림 가운데 셀 수 없이 많은 고난이 있었다는 것.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방법은 뿌리가 굳게 내리도록 주기적으로 흔드는 것이다.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랐는가 확인하는 방법은 뿌리가 굳게 내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크게 흔들어 보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고난은 이처럼 말씀이 우리 안에 깊게 뿌리내리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속에 뿌리내린 말씀의 깊이를 측량해 보는 수단이 된다.


왕정시대 때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람은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으나, 나병 환자였다. 이스라엘 땅에서 잡아온 어린 여종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가 그를 낫게 해 줄 것이라 말하자, 나아만은 부푼 마음으로 엘리사를 찾아간다. 엘리사는 자신을 찾아온 나아만에게 자신의 종을 보내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을 전달한다. 나아만은 한 나라의 영웅인 자신을 직접 만나지 않은 것, 그리고 깨끗하고 좋은 물이 아닌 곳에서 몸을 씻으라고 한 것에 불만이 생겼으나, 선지자의 말에 순종했고 결국 나음을 얻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었다. 만약 그가 중간에 찾아온 불만과 분노에서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는 나음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편한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고난의 길로 인도하는 방식은 심히 창조적이어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벗어난다. 그렇게 우리는 흔들리며 더 깊은 뿌리를 내리든, 깊게 내리지 못한 뿌리가 뽑혀 나가든 둘 중 하나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나아만 장군의 고난이었던 피부병은 말씀의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고난들도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수단으로 역 이용한다면, 알 수 없는 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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