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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Park Jul 31. 2022

순풍과 역풍

창세기 22:6-14


실외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한쪽은 약하게 쳐도 셔틀콕이 제트기처럼 날아가지만, 한쪽은 아무리 강하게 쳐도 상대방에게 공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쪽에겐 순풍이지만, 한쪽에겐 역풍인 것이지요.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일이 순풍으로 다가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역풍으로 다가옵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삭은 성품이 매우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독자인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 땅에 있는 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번제를 드리는 사실을 알았던 이삭은 아버지가 번제물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아버지를 따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실 것이라며 아들과 함께 말씀하신 장소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을 번제물 두는 곳에 묶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 칼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죽이는 시늉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이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다시 이삭을 살려 주실 것을 믿으며 칼을 들었습니다.

부활을 경험해   없고, 들어본  없던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의지했는지   있는 장면이자, 그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모든 과정에서 어떠한 행동과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은 아버지가 노망이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서 아버지께서 하는 일에 대해 질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나는  자리에서 죽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마치 인형처럼 아버지의 모든 지시를 그대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가 온유하다는 평가는 바로 이런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말씀 위에 서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후에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블레셋 땅에서 거주하는데,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어 상상하기 어려운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양이 얼마나 컸는지, 주변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그의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우물을 모두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 그랄 골짜기로 거처를 옮겨 이삭은 다시 아버지의 우물을 팝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을 잊지 않을 만큼 우물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흙으로 메꾸었던 블레셋 사람들이 이번엔 우물을 메꾸는 대신  우물이 자신의 것이라며 소유권 주장을 합니다. 이삭은 여기서 다투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도 쫓아와  우물도 자신들의 것이라며 주장한 것입니다. 역시 이삭은 다투지 않고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거기서는 다툼이 일어나지 않자 이삭은  우물을 넓은 , ‘르호봇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빼앗은 일로 왕인 그를 책망하였으나, 이삭은 우물을 위하여 다투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우물인데, 그리고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인데, 그것을 불의하게 빼앗고 괴롭히는 일을 만나면 우리는 그것이 삶의 역풍이라고 생각할  있습니다. 이삭은 어쩌면  자리에서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블레셋 사람들과 다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에게 진정한 역풍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삭처럼 번제단에 몸이 묶이는 , 그리고 자신이 물려받은 생명과도 같은 우물을 억울하게 빼앗기는 것을 역풍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모든 육신의 고난은 순풍의 시작점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난 것은 집안의 멸망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얻게 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건널  없는 홍해 앞에  것은 이스라엘의 마침표가 아니라, 그들의 멈추지 않는 찬양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것은 이스라엘 군대의 패배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대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삭,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다윗이 만난 모든 고난의 중심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속에서 우리는 도저히 우리가 넘을  없을  같은 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소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역풍이 바로 이것이지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제일 피하고 싶은 것은 이삭이 만났던 원수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떠나야 하는 상황들, 모세가 섰던 미래가 보이지 않는 홍해, 그리고 다윗이 상대했던 이길  없는 골리앗입니다. 상상만 해도 골치 아프고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지만, 말씀에 거하면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순풍을 만나는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고난을 넘어서야지만, 수풀 뒤에 걸려있는 양을 발견하고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를 찬양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순풍을 역풍으로 만드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하나님의 방법보다 자신의 책략을 더욱 의지했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결국 장자의 축복을 뺏어왔으므로,  전략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쉬운 길을 돌아가는 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형으로부터 도망쳐야 했고, 어머니의 죽음을 곁에서 보지 못했으며, 자신이 속인 것처럼 자식들에게 속임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자신의 책략을 썼으나, 자신의 다리뼈가 부러지는 순간까지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자가 되었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어두운 고래 뱃속에서 사흘간 마음을 돌이키는 시간을 가져야 했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대로 니느웨를 밟게 되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를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훈련시켰습니다. 훈련 시간은 30, 20, 혹은 10년이  수도 있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이  기간을 40년이나 늘린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우상을 만드는 일이 당시에는 티끌만 한 도움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들보만 한 짐을 스스로 지게  격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노력하지 않았어도 장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를 아무리 미워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곳에 말씀을 두셨을 것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10, 혹은 100년이 걸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것이 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만들어내는 역풍은 그것을 순풍으로 돌리기 이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날마다 점검합니다. 내가 가는 길 뒤에서 바람이 부는지, 앞에서 바람이 부는지. 하나님께서 왼쪽으로 나를 기울였는데, 내가 오른쪽으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준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은 반드시 말씀을 비추어 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그런 상황은 말씀보다 육신을 위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들어가지 않고 겉으로 볼 때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땅처럼 보이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그 선택은 반드시 역풍을 만나게 되고,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기뻐하고 그 길에 복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불게 하는 순풍을 날마다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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