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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Park Sep 04. 2022

나는 할 수 없다.

낙담하는 마음속에  발견되는 우리의 믿음

나는   없다 (고전 1:26-31)


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실패할 때,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기다려야 할 때, 마음을 고백했는데 거절당했을 때, 우리는 좌절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좌절의 감정은 때로는 너무 커서 다시 일어날 생각조차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춰 스스로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강한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출생 뒤에도 오랜 시간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고, 독립 후에도 함께 일 할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꾸려 상호 간의 관계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약함은 비단 육신에 속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 역시 때가 되면 배고픔을 느끼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은혜를 갈망하고 이것을 채움 받지 못하면 기쁨과 평안을 지속하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스스로 하는 신앙생활이 있습니까? 비록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실천이 없다면, 그것을 행하는 대상이 없다면, 그것이 믿음인 것을 무슨 수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말합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18). 하나님께서 우리 게 주신 십계명 중 여섯은 이웃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곧, 이웃이 없는 자는 계명을 행하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드러낼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에 낙담이 찾아오는 시간은 스스로 견디고 일어나는 시간이 아니라, 회복의 시간이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를 다시 일으켜 줄 존재를 의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매우 강하다고, 혹은 강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해냈기 때문에, 항상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넘치는 자신감과 우월감을 가질  있습니다. 혹은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 성공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꾸미기도 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결혼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 결혼하고 자녀를 가졌을  그들은 많은 짐을 스스로에게 지웁니다. 재정적 독립을 위해 수고하고 사회에서 받는 많은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녀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이 겪은 어려움과 고통을 자녀에게 감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숙한 사회인, 성숙한 부모의 모습인 것은 분명하지만,  안에는 우리가 조심해야  짐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 강하다는 착각, ‘나는   있어!’라는 마음입니다.  없이 많이 쓰인, 그리고 지금도 출간되고 있는 자기 개발서의 핵심은 ‘나는   있어입니다. ‘나는   있어라는 삶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문제가 됩니다. 그들은 성공하면, 삶에 대한 짐을 내가 지고 있기 때문에 성취에 대한 보상도 자신에게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능력으로   믿기 때문에 단순히 승리에 대한 보상을 즐겁게 여기는 것을 넘어, 자신처럼 성취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실패자로 여깁니다. 요즘 인터넷에  공무원 논쟁이 뜨겁습니까? 오로지 그들이 받는 월급  수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의 종류가 다양하고  일의 존재가  필요한 지에 대해 사람들은 거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했습니까? 따져 보자면, 이새의 아들  가장 실패자였는데 말이죠. 그것은 다윗이 자신이 하는 일을  자체로 존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양치는 일에 자신을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그는 골리앗을 보고 자신이 싸웠던 곰과 사자를 떠올릴  있었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입하는 성취와 물질주의에 무릎 꿇는다면, 인생의 성공은 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있어삶에서는 마찬가지로 실패도 문제가 됩니다.


 스스로의 능력을 의지했기 때문에, 마음에 찾아온 깊은 낙담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낙담했다고 해서 이러한 사람들이 도전을 포기하거나, 걸음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규칙을 믿으며 그것을 발판 삼아 더욱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이전에 경험했던 실패를 다시는 경험할까 하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시간이  때마다 꺼내보며 매우 고통스러워합니다. 겉으로는 진취적이지만, 사실  속은 온갖 상처들로 가득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결국 낙담이 되어 ‘노력해봤자 아무 소용없어’, ‘기도해서 뭐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마음에 있는 상처가 회복되지 않고, 과거의 실수가 잘못이 계속 자신을 찌르고 있다면 이제 그만 ‘나는   있어마음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없어라는 고백을 기다리십니다. 모세가 모든 걸   있는 왕의 신분은 필요 없습니다. 그의 젊음과 기력도 필요 없습니다. 그가 80세가 되어 ‘나는   없어라고  ,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  있어라고 말했던 작은 아이 성에서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  없어라고 말했던 난공불락 요새인 여리고 성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나는 ‘구원받을  있어라고 확신하며 사람들 앞에 서서  소리로 기도 했던 바리새인들은 구원과 멀었지만, 나는 ‘구원받을  없어라고 좌절하며 눈물로 기도 했던 병자들과 죄인들은 오히려 구원과 가까웠습니다. 사람은 성공 앞에서 믿음을 구분할 능력이 없습니다.  순간 입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더라도 마음의 중심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수고를 칭찬하는 마음이 가득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낙담하는 마음속에서는 우리의 믿음을 구분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수고를 의지하는 사람은 회복할  없는 낙담을 경험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토요일은 추석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간의 다툼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날이 명절과 그다음 날이라고 합니다.  그럴까요? 가족들의 대화 주제가 그동안 자신들이 사회에서 이루어  성취감을 자랑하는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너는 누굴 만났니?’, ‘이제 집은 구했니?’, ‘어느 직장에 다니고 있니?’. 우리는 이런 대화에 참여하지 맙시다.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많이 받는다고 사람들에게 전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다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성공의 발판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는 고통과 절망에서 구원해  분을 찾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전도의 대상은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입니다. 하나님이 수단이 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 되는 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랑은 세상에서 이루어  성공이 아니라, 나의 좌절과 실패, 마음의 고통과 절망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명절 , 나의 자랑이 내가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살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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