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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Park Sep 19. 2022

긍정이라는 속임수

왜 야곱은 형제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나

긍정이라는 속임수 ( 37:1-5)


사람의 마음은 이분법을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끊임없이 분리합니다. 우리가 좌절하고 고통받는 일을 우리는 고난이라 명합니다. 흔히 이러한 고난을 겪으면 사람들은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소이 긍정적이고 행복한 상태,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유지하는 상태가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과 고난을 모두 마친 보상을 받는 상황으로 여깁니다. 물론 인생에서 겪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는 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진정한 상은 상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을 주시는 이의 마음에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넘어진 자는 다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일어 선 자, 혹은 자신이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의 손을 잊기 쉽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자는 다시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합니다(고전 10:12). 곧, 넘어지든 일어 서든 하나님의 손을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야곱에게는 베냐민이 태어나기 전 열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막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해서 그에게는 채색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채색옷은 소매가 길고 장신구가 달린 옷이라 일반인은 입을 수 없는 옷이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요셉을 각별히 사랑했습니다. 사랑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남성과 여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사랑처럼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종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한 일반 은총에 속합니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사람이기 때문에 받은 복이며, 모든 자들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귀한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서 피어날 때, 세상 사람들 뿐 아니라, 믿음을 가진 우리도 이를 쉽게 긍정적인 감정으로 여깁니다. 사랑은 어떠한 열매든 미움의 열매와 매우 다른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자신의 아들 요셉을 각별히 사랑한 것은 긍정적인 일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의도가 어쨌든, 예기치 못하게 이야기가 흘러가게 됩니다. 특별히 사랑받은 요셉은 행동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형들이 잘못한 것을 모두 아버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잘못은 잘못이 맞습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형제의 잘못을 고하는 요셉의 행동은 형제들과 요셉의 냉담한 관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요셉이 가지고 있는 형들에 대한 무시가 섞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요셉은 형제들의 단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게 되는데,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며 형제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미워하는 형제들의 잘못이 먼저이지만, 그 미움의 출발이 야곱의 사랑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형제들의 미움이 나날이 깊어지자, 야곱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받아 집에서 떠나게 되었을 때, 형제들은 그를 은 20을 받고 애굽으로 향하는 상인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입고 있던 채색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마치 야곱이 짐승에게 찢어 죽은 것처럼 사고로 위장해 아버지를 속입니다. 야곱은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을 잃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얼마나 민첩하고 예민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과 아버지를 속였고 자신의 삼촌 라반까지 속일 만큼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자신의 아들들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향하는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그날, 그를 원수처럼 여기는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혼자 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의 대화와 그들이 요셉을 대하는 태도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을 그 예민하고 민첩한 야곱은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야곱이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에 잠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눈치가 빨랐던 시절은 그가 복의 순위에서 밀리고,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특수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와 씨름을 벌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평안이 찾아오고 사랑하는 아들을 품게 되자 야곱의 민첩함은 결국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예민하게 반응할 때는 언제인가요? 그것은 고난과 고통이 우리의 곁에 있을 때입니다. 말씀에 희망을 걸고 기도를 멈출 수가 없는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신앙이 무뎌지는 때는 언제인가요? 그것은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었다고 믿는 순간,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에 우리가 잠식되어버린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넘어진 자가 낫습니까, 아니면 일어서서 하나님의 손을 잊어버린 자가 낫습니까? 넘어지지 않는 것이 좋지만, 차라리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전자가 더 낫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감각이 무뎌진 것처럼 무뎌지지 않기 위해 적응하고 편안히 자리 잡으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밀어내야 합니다. 며칠 전에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습니다. 머리가 어느 정도 새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주변에서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하도 들어서 어머니께 부탁해 집에서 염색을 했습니다. 염색을 하고 거울을 봤는데, 머리가 얼마나 검게 변했는지 입에서 감탄이 나왔습니다. 염색을 하고 나서야 이전에 내 머리가 얼마나 하얬는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깨닫는 것은 이처럼 어렵습니다. 옆에서 보면 모두 보이는 문제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 문제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가장 많이 속을 때, 스스로 괜찮다 여기는 때는 자신이 빠진 이분법 중 좋다고 여기는 것, 긍정적인 감정이라 여기는 것에 발을 담고 있을 때입니다. 우리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봐야 하지만, 동시에 기쁨 속에서 두려움을 품어야 합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욥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모든 것을 잃은 절망 속에서 믿음으로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희망은 다시 이전처럼 건강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절망을 돌아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으로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이처럼 욥기는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끝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을 놓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나 사실 욥기는 기쁨 속에서 두려움을 품어야 한다는 메시지 역시 전합니다. 욥은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을 때도 혹시 자신의 자녀들이 죄를 지을까 염려하여 그들을 위해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쁨 속에서도 두려움을 품었습니다. 바로 거룩한 두려움이고, 이것이 곧 넘어질까 조심하는 마음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웅덩이에 빠졌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처음부터 웅덩이에 빠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웅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요셉이 비록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형들의 미움으로 인해 애굽에 팔려 갔지만, 그 모든 미움과 불화를 자신의 선한 계획에 편입시키고 큰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가족이 화목하게 지냈다면, 불필요한 고난을 당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누리는 것을 일반 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들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은혜를 특별 은총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가 일반 은총을 특별 은총으로 오해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나에게 어려운 일이 없으면  신앙에는 문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안에서 샘솟는 감정이 긍정적인 쪽에 속하면  믿음이   있는  압니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거나 사업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과거에 내린 시험을 통과한 일종의 보상으로 여깁니다.  모든 것은 상황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져 일반 은총을 특별 은총으로 오해하는 데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에 빠져들 , 우리의 영적 감각은 너무나 무뎌져서 누가 봐도 문제인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있습니다. 슬픔과 고통 가운데 희망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도 거룩한 두려움을 잃지 않는  역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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