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요일 오전 10시, 병원 로비로 나간다. 그곳에는 좀비 같은 모양새를 한 환자들과 그들을 부축한 채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야외에서 햇빛 쬐는 것을 도와주는 간호사들이 있다.
이 오전 운동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폐쇄 병동 환자들이 세상과 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하루 중 유일한 순간이며, 보이지 않는 내상만이 존재하는 우리에게 규칙적인 식사, 운동, 취미생활 등의 뻔하고 건조한 처방 따위가 내려진 까닭이다.
내가 폐쇄 병동에 처음 입원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다. 그리고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입원이다. 이유는 매번 약물을 사용한 자살 시도다. 자살 시도, 이건 아주 궁극적인 사유고, 좀 더 단순한 연유는 약 기운이 돌 때 느껴지는 몽롱함과 환상 속에 깃든 것만 같은 비현실감이 좋아서다. 그러다 죽으면 어쩔 수 없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진단이 내려질 뿐인 것이다. 그만큼 삶에 거는 기대나 현실에 대한 적응 의지가 전무하다는 뜻도 된다.
다행인지 요행인지, 어쨌든 난 흐릿하고 희미한 생의 저편인 죽음의 강에서 네 번이나 되돌아왔고, 생사를 넘나든 역설적 회귀의 종착지는 매번 이곳, 폐쇄 병동이다.
- 엘 씨, 이번엔 무슨 약을 먹었어요?
- 아빌리파이요.
- 몇 개?
- 백 개?
- 헐... 안 죽고 살아난 게 용하네요.
- 열흘 만에 깨어났다나...
- 엘 씨도 이번엔 퇴원하기 힘들 것 같네요.
- 잘됐죠 뭐. 병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입관체험이나 한다고 생각하죠 뭐.
- 유서는 썼어요?
- 뭐 하러 써요.
- 하긴...
- 죽어서까지 내가 어떻게 되길 바라는 건 세상에 대한 지리멸렬한 미련만 남은 셈이니까.
- 그건 그렇고... 왜 매번 약이에요?
- 상상력이 부족해서요. 그리고 발음이 예쁘잖아요.
- 발음?
- 아빌리파이.
5년째 한 병동에서 생활 중인 제이 씨가 나를 반겼다. 그녀의 손에는 하하키기 호세이의 소설, 폐쇄 병동이 들려 있다.
- 이건 뭐예요?
- 책이요. 심심할 때 읽으라고요. 휴대폰도 뺏겼을 거 아냐.
- 그건 그런데... 하필 제목이 폐쇄 병동?
- 제목만 그래요. 책에 나오는 병원은 사실 개방 병동이야.
- 근데 왜 폐쇄 병동이래요?
제이 씨는 혀 밑에 숨긴, 미처 채 녹지 않은 알약 하나를 보여 주고는 말없이 병원 곳곳에 있는 시시티브이와 경비원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 이런 것들이 다 철창살이잖아요.
- 으흠...
- 암튼, 읽어 봐요.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니까.
제이 씨가 떠났다. 나는 책 표지와 시시티브이를 다시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그녀의 혓바닥 아래 생선 비늘 같이 딱 붙어있던 알약을 떠올렸다.
세상이 정한 어떤 규준에 따라 구분된 정상인에 의한 비정상인에 대한 강제와 감시 속에서 살아가는 폐쇄 병동의 생활이, 죽음이란 일탈과 환상을 추구했던 병원 밖의 내 방식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 걸까...
책의 추천사를 펼쳤다. ‘다양성을 품은 인격이면서도 정신병자라는 딱지가 붙어 그 이상으로는 수용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세인의 편견에 던지는 휴머니즘적 돌직구’란 구절이 보인다. 마치 제이 씨의 혀 밑에 명징히 박혀 있던 알약이 지금쯤 위장까지 흘러들었을 거라 굳게 믿는 담당 간호사의 망상만큼이나 쓸데없고 아득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