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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Sep 22. 2022

중독된 도시

조명이 켜지고, 리사의 거실. 뉴스 채널이 틀려져 있고, 테이블 위에는 신문기사가 펼쳐져 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리사.


리사 - 여보세요? 케빈?

케빈 - (방금 잠에서 깬듯한 목소리로) 리사...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리사 - 지금 당장 뉴스를 틀어 봐요. 당장이요!


케빈, 눈을 비비며 리모컨을 찾아 티브이를 튼다. 뉴스에는 관자놀이에 총을 맞아 죽은 젊은 남성을 안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인의 사진이 나온다.


케빈 - (놀랐다는 듯) 리사... 지금 이게 무슨...

리사 - 죽은 남자는 데이비드 휴이트, 옆에 정신이 아주 나가버린 남자는 필라델피아 상원의원 존 휴이트, 데이비드의 아버지죠. 존은 이번에 캐리 대통령이 필라델피아를 방문했을 때 전 일정을 담당했던 사람이고요.

케빈 - (잠시 뜸을 들이며)... 데이비드가 도대체 왜 켄싱턴 애비뉴에서 총을 맞은 거죠?

리사 - 데이비드가 켄싱턴 지역의 공급 담당자였어요.

케빈 - 무슨...

리사 - (답답하다는 듯) 펜타닐 말이에요! 데이비드가 켄싱턴 지역 최대 규모의 갱인 아이리시 화이트의 펜타닐 공급책이었다고요!

케빈 -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럴 수가...

리사 - 존은 분명 자기 아들이 갱과 관련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을 거예요.

케빈 - (폰으로 구글링을 하며) 하지만... 리사... 그렇다는 물증도 없고, 존이 인터뷰에서 이미 아들이 갱단의 마약 공급책인 걸 몰랐으며 아버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어요. 갑자기 탕하는 총소리만 들렸을 뿐 범인의 얼굴은 아무도 못 봤고, 데이비드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기 때문에 용의자가 특정되진 않았지만, 사람들도 아이리시 화이트와 적대 관계에 있는 군소 갱단에서 작당 모의로 데이비드를 죽인 거라고 믿는 것 같고요.

리사 - 그건 당연히 거짓말이죠! 케빈, 그 말을 믿어요?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요? 그리고 생각해 봐요. 아이리시 화이트는 이 지역 최대 규모의 갱이예요. 그런데 잔챙이들이 아이리시 화이트의 통수를 이렇게 시끄럽게 친다?그리고 군소 갱단의 스나이퍼 실력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총 한 발로 정확히 관자놀이를 쏴 죽였어요. 게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 모습이 노출되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자신을 은닉하면서요. 사망 시간이 자정을 갓 넘겼을 때니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누가, 어디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왜 데이비드를 쐈는지 본 사람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고요. 분명 더 큰 조직이 배후에 있는 거예요.

케빈 -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짚으며) 리사...

리사 - (케빈의 말을 끊으며) 그리고 한 가지 더요! 이번 대선에서 내건 캐리의 공약 중 사람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마약 퇴치였어요. 2021년에 미국에서 마약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최초로 10만을 넘어선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국가적 재앙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죠. 그렇다면, 캐리가 필라델피아에 내방했을 때, 가장 먼저 어디를 들러야 했겠어요?

케빈 - (한숨을 내쉬며) 켄싱턴 에비뉴죠.

리사 - 빙고! 하지만, 어쩌면 캐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정치 선전용으로 제격인 켄싱턴 에비뉴 방문은 전 일정에 걸쳐 단 한 차례도 없었죠. 미국에서 헤로인 과다복용 비율이 제일 높은 곳이 바로 필라델피아, 켄싱턴인데도 불구하고요. 확실한 점은 캐리의 내방 일정 모두를 존 휴이트 의원이 담당했다는 거고요. (확신하는 투로) 존은 확실히 알고 있었어요. 케빈.

케빈 - (또 한숨을 쉬며) 좋아요, 리사. 당신 말이 맞다고 쳐요. 그렇던들 무슨 소용이에요? 이게 당신 소논문에 무슨 도움이 되는 거죠?

리사 - 소논문으로는 절대 커버가 안 되는 덩어리죠.

케빈 - 그러니까요.

리사 - 다큐멘터리로 만들 거예요. 제목은 '중독된 도시'.

케빈 - (깜짝 놀라며) 뭐라고요?

리사 - 모두 제대로 알 필요가 있어요. 존 휴이트와 켄싱턴을 장악한 펜타닐과의 관계를. 케빈, 내일 우리 집으로 와요. 제 친구들 중에 저널리스트와 필름 메이커가 있어요. 소개해 줄게요.

케빈 - 리사... 저는 빠지면 안 될까요?

리사 - 안돼요! 우린 이미 한 팀이에요. 맥머피와 브롬든 처럼.

케빈 - 언제부터?

리사 - 유펜 중앙도서관에서 당신이 나를 을 때부터.

케빈 -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하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신세가 되게 생겼네...

리사 - 걱정마요. 안전하게 진행할 테니까.

케빈 - 장전된 라이플 앞에서도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는지 지켜보죠. 내일 저녁 7시까지 갈게요. 그때 봐요.


통화가 종료된다. 죽은 데이비드와 그를 끌어안고 있는 존의 사진을 배경으로 하여 다부진 표정의 리사와 걱정 어린 얼굴의 케빈이 나란히 서서 관객 쪽을 쳐다본다. 잠시 후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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