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커진 쌀쌀한 가을의 어느 날, UPENN 중앙 도서관의 문학 서가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
여자 -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여기 어디쯤에 있을 텐데...
남자 – (여자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무슨 책 찾으세요?
여자 – 켄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찾고 있어요. (책장을 쭉 살피며) 어디 있는지 안 보이네요, 1960년 작인데...
남자 – 1962년 작이죠. (맨 위쪽 책장에서 책을 빼주며) 여기 있네요.
여자 -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감사해요. 이 작품을 잘 아세요?
남자 -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며) 데일 와서먼 버전으로 연극을 했었거든요. 그때 제가 맥머피 역을 맡았어요. 뭐... 고등학교 연극반에서였긴 하지만, 그것도 어쨌든 연극은 연극이죠.
여자 - (남자 쪽으로 몸을 아주 돌리며) 고등학생 때 이 책의 주인공을 연기하셨다?
남자 – (어깨를 으쓱하며) 그런 셈이죠.
여자 – 고등학생이 연기하기엔 맥머피란 캐릭터가 가볍지 않았을 텐데, 공부를 많이 하셨나 봐요?
남자 – 나름대론 했었죠. 먼저... 맥머피가 랫치드 수간호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판옵티콘 같은 감시체계에 왜 반발을 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것도 수간호사의 비위를 거스르는 특유의 장난기와 호탕함으로 말이죠.
여자 - (흥미롭다는 듯) 반항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남자 – 일단, 성향적인 측면이 있겠죠. 유전자 자체에 반항아적 기질이 새겨져 있는 거죠. 이건 맥머피 부모의 성향이나 성격, 양육태도나 양육환경 등을 살펴봐야 더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고된 노동을 피하기 위해 정신착란이 있는 척 교도소에서 정신병동 위탁 환자가 되는 것에 자진한 것만 봐도 그럴 거라 짐작 가능해요. 그리고 또...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진단 기준으로 보면 반항 장애에 속하겠죠. 권위자와의 잦은 논쟁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권위자의 요구나 규칙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것을 즐기니까요. 직간접적으로요. 랫치드가 공동체 치료 이론이랍시고 회의에서 하딩의 성적 수치심을 공개적으로 자극할 때... (여자를 쳐다보며) 그 장면 아시죠?
여자 - (작게 웃으며) 계속 말씀하세요. 잘 듣고 있어요.
남자 – 맥머피는 그때 하딩을 진실 속으로 끝까지 밀어 넣어 결국 스스로 랫치드를 ‘천하의 못된 년’이라 부르게 만들었어요. 이건 주변 상황이나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거대 규칙의 중심부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간접 반항의 표식이죠.
여자 - (남자의 말을 가로막으며 재밌다는 듯) 비정상적 거대 규칙에 대한 반항, 그걸, 랫치드는 반드시 억압해야 할 권위에 대한 불복종이자 선동이라고 봤고요. 직접적 반항은 제가 알 것 같은데요?
남자 – 뭐죠?
여자 – 회의 시간에 의사를 거듭 설득해 욕실을 기어이 휴게실로 만든 장면, 그리고 담배를 갖기 위해 수간호사실 유리창을 내리치는 장면이요. 그것도 두 번이나 유리창을 깨버리니까... 또... 회의에 투표 시스템을 도입하고, 낚시 여행을 통해 환자들이 스스로 세상을 마주하고 병원 밖의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도움을 주는 장면... 이만하면 아주 명백하게 직접적인 반항들 아닌가요?
남자 -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정확하시네요. 그쪽 이름이 뭔가요?
여자 – 리사. 그쪽은요?
남자 – 케빈. 다리가 좀 아픈데, 우리 앉을까요?
리사와 케빈은 문학 서가의 책장 기둥을 등받이 삼아 나란히 땅바닥에 앉는다.
케빈 – 책 내용을 다 아는 것 같은데, 왜 또 읽으려는 거예요?
리사 – 이번 연극 공연에서 제가 랫치드 수간호사 역할을 맡았거든요. 고등학교 연극부보다는 확실히 퀄리티가 뛰어난 대학 연극부에서요.
케빈 – (놀랐지만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말요?
리사 – 뻥이에요. 하하. 사회학 소논문 주제와 관련이 있어서 그래요. 이 책이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비상식적 구별을 꼬집고, 보이지 않는 거대 체제에 대항하는 약자를 그리며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단면을 묘파 했잖아요. 그때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 분석할 계획이에요. 무엇이 다른지, 나아진 점은 있는지... 그런데 아직, 현재는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 체제에 의해 사람들이 병들어가고, 또 어떤 해결책을 강구하는 건지에 대한 비교 기준점을 확실히 잡지 못했어요. 도와주실래요?
케빈 - (골똘히 생각하며) 음... 좋은 생각이 하나 있긴 한데...
리사 - (반갑고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뭔데요?
케빈 – (손목시계로 시간을 체크하며) 시간 있어요? 직접 보여드릴게요.
펜실베니아 켄싱턴 애비뉴를 가로지르는 케빈의 차 안.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을 리사가 사진으로 찍고 있다. 펜타닐 중독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리사 - 이건... 정말이지, 뉴스로 접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네요.
케빈 - 그렇죠? 펜타닐은 클래식한 마약이 아니거든요. 신종 합성 마약이죠. 펜타닐 중독자들은 기분 좋으려고 약을 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처음엔 그랬겠죠.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약물이니까. 근데 중독되고 나서는 무조건 고통스럽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예요. 금단 중에 느껴지는 고통이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으니...
차 안에 흐르는 적막. 잠시 후 이어지는 리사의 말.
리사 - (창에서 고개를 거둬 케빈을 바라보며) 그러니까 케빈 씨 생각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랫치드 수간호사로 대변되는 강제적이고 권위적인 통치 방식과, 현재 통제 가능 지점을 이미 오래전에 넘어선 마약 거래와 중독 문제, 그 이면에서 이 중독의 늪지대를 장악한 거대 카르텔의 체제 유지 방식을 비교 분석하라는 말씀인 거죠?
케빈 -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책 속에 등장하는 정신 병동의 환자들에게나 지금 저 거리 위의 중독자들에게나 어느 순간부터 통제당한다는 것이 그들의 의지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게 됐을 테니까요.
케빈의 얼굴을 한동안 쳐다보던 리사가 다시금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거리를 바라본다. 리사는 지금 거대한 콤바인 한 대를 상상하고 있다. 옆에서 리사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케빈의 얼굴이 중첩되며 서서히 조명이 어두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