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과 집을 반복하다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과로로 인한 몸살이었죠. 그때부터였어요. 이렇게 살다 죽으면 참 허망하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취미를 찾아 유랑했죠. 필라테스, 탁구, 배드민턴, 볼링, 피아노, 도자기 등등, 안 해본 게 없었어요. 그런데 뭘 해도 처음에만 조금 할 만하더라고요. 모두 몇 달 하다 그만두기 일쑤였죠. 그러다 집 앞에 새로 생긴 화실을 발견했어요. 화실 간판을 보는 순간, 어릴적 화가가 되고 싶어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손재주가 남달랐거든요. 그렇다고 미술학원의 커리큘럼을 잘 따라간 것은 아니었지만요. 그저 나만의 삘(feel)대로 창작하는 걸 좋아한 독특한 어린이였죠. 정물화에는 젬병이었지만 상상화에는 소질이 있었달까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각사각 거리는 연필 소리가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연필이 종이를 스치는 고유한 소리에 홀린 듯, 화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 이젤 앞에 앉았어요. 그때 뭔가 삘!이 왔어요. 아, 여기가 내 자리구나. 기초 소묘부터 시작해서 빠르게 기본기를 습득해 나갔어요. 처음 인물 소묘를 하던 날, 선생님이 스케치하는 제 모습을 보더니 ‘마음대로 한 번 해보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어릴 적 미미 인형의 머리카락을 다 잘라놨을 때, 엄마가 내게 말했던 ‘어디, 네 마음대로 해봐라!’와는 사뭇 다른 어투였죠. ‘스스로를 믿고 마음 가는 대로 그려봐라, 나 또한 그런 너를 믿는다.’라는 속뜻이 담긴 스승의 전지적인 말투랄까요? 아무튼, 선생님의 응원과 믿음에 힘입어 정말 마음대로 그려봤죠.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와, 이 정도 실력이면 서울대는 힘들어도 홍대는 갔겠는데요?’ 어안이 벙벙했어요. 내가 그렇게 실력이 좋다니... 설마 제가 학원을 그만둘까 봐 선생님이 먼저 밑밥 깐 말은 아니었겠죠? 어쨌든, 그때부터 누군가가 제 취미를 물어보면 그림 그리는 거라고 대답하게 됐어요.
오직 소묘만 한 2년을 그렸어요. 연필 하나로 내 시선이 닿는 모든 면의 명과 암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점이 저를 매료시켰거든요. 지금은 주로 유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유화는 소묘와는 다른 매력이 있죠. 뭐랄까... 기다림의 미학을 알려준다고 해야 할까요? 유화는 덜 마른 상태에서는 덧칠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수정이 필요할 땐 아무리 붓을 놀리고 싶어도 무조건 기다려야 하죠. 급한 마음에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덧칠을 하면... 어떻게 될지는 말 안 해도 아시겠죠? 그래서 유화를 그릴 땐 아주 느린 마음으로 임해야 해요. 기다리는 과정조차 예술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면서요.
저의 또 다른 장점은, 글을 짓는다는 거예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에 한 편씩은 짓고 있죠. 장르도 다양해요. 그냥 일기처럼 끄적거릴 때도 있고, 지금처럼 에세이를 연습할 때도 있죠. 때론 종이 위에 허구의 무대를 세우기도 해요. 글짓기는 몹시 힘들고 재밌어요. '힘들지만 재밌어요.'라고 적지 않은 이유는 심지어 힘든 것도 즐기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예요. 잘 짓고 못 짓고는 아직 논할 때가 아닌 것 같지만, 그만큼 글짓기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거죠. 무언가에 도전할 때 재미를 느낀다면 일단, 반은 성공한 거라고 봐요. 그 재미와 흥미가 노력과 또 다른 도전의 바탕이 되고 종국에는 특기가 되는 법이니까요.
장점을 세 가지는 채우고 싶은데, 마지막 하나가 생각이 안 나네요. 아무래도 요 근래 우울과 부정 속에 스스로를 가둔 적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나머지 장점 하나를 찾기 위해 또 저를 찬찬히 들여다봐야겠네요. 자세히 보면 예쁜 구석 하나쯤은 어디엔가 어렴풋이 남아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