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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Nov 10. 2022

위로와 위안의 공간

에세이 연습 과제 9 - 나만의 비밀 공간


0.5평 남짓 한 작은 공간. 도서관 한 귀퉁이에 삼 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하루의 명과 암을 모두 품은 구석, 창문을 열고 닫음이 안과 밖의 경계를 명징하게 구분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휴식 시간에 잠시 맛보는 달콤한 낮잠을 위해서나 세상의 날 선 시선과 혀로부터 나를 꽁꽁 숨기고플 때,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햇살 속에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싶을 때 찾곤 하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활짝 열린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온 햇빛을 정통으로 맞아 세네카의 안료가 모두 새파랗게 변해 버린 오래된 책들이 책장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2인용 소파 위에 털썩 걸터앉아 내 시선이 수평으로 맞닿는 곳을 찾아본다. 그러면 거기에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사상사’가 적힌 책등이 보인다. 빌려 가는 이가 아무도 없는지, 언제고 내가 들를 때마다 비스듬한 자세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 커튼을 조금 젖혀 자연 독서등을 만들고, 하루키의 발자취를 따라 이스트 햄프턴부터 고베까지 이어지는 상상의 루트를 여행한다.


이곳에 앉아 양 겨드랑이 사이에 부드러운 쿠션을 끼고 책을 읽다 보면 몸과 정신의 모든 구석이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푹신한 소파가 딱딱한 의자를 밀어내느라 애쓴 나의 엉덩이를, 노르스름해진 종이 위에 찍힌 검은 활자가 전자파에 지친 내 눈을, 쿰쿰한 나무 냄새와 텁텁한 종이 냄새가 매연으로 가득한 도시처럼 갑갑해진 나의 마음을 달래준다.


이곳에서 책을 읽노라면, 지금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이 손에 들린 책인지, 아니면 이 작은 공간인지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을 때도 나는 곳에 외따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편안함을 느끼곤 하니, 공간 자체가 주는 위안이 생각보다 훨씬 안온한가 보다. 나와 작은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메우고 있는 향과 빛과 책... 이곳에 오면, 이 모든 소리 없는 것들로부터 오는 위로가 몹시 소중하다.


요즘은 이곳에서 글을 짓기도 한다. 지금 이 글도 이곳에서 혼자 흐뭇하게 쓰고 있는 중이다. 사람에게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혼자만의 공간이 꼭 필요하단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오로지 나만 아는, 나만을 위한 공간에서 느끼는 안집함이야 말로 인간이 진정으로 고독을 고독답게 즐길 수 있는 전경이자 배경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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