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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Nov 17. 2022

어른 K의 생일

에세이 연습 과제 14 - 서툰 사랑 이야기


원치 않아도 매년 겪어야 하는 날이 있다. 바로 생일이다. 삼십을 훌쩍 넘어 사십에 가까워지는 해를 겪다 보면 생일은 탄생한 기쁨을 기념하는 고귀한 날이기보다는 흘러가는 세월에 한없이 쓸쓸해지는 날일뿐이 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 생일에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데 사랑하는 이가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랑하는 이의 생일은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1년 중 하루에 불과한 날에서 아주 고유하고 특별한 날로 바뀐다. 날이 바뀌는 자정까지 뜬눈으로 기다렸다가 그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건 기본이다. 이 사람을 이토록 예쁘게 낳아 길러 준 것에 대해 그의 부모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는 쑥스러운 짓까지 하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낯간지러운 짓을 서슴없이 자행해보는 날이 애인의 생일이다.


언젠가, 나는 K의 생일을 무려 사흘이나 지나 축하해준 적이 있다. 그의 생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딱히 명징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삶은 평소와 같게만 바쁠 뿐이었고 정신이 아득히 빼앗길 정도의 일도 없었는데 깜빡하고 말았다. 그의 생일을 지나친 것이 문득 머릿속을 스치던 그날도 나는 유튜브 따위를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몹시 미안하고 당황스러웠다. 장거리 연애 중이었던 우리라 평소에 잘 챙겨 주지도 못하는데 그의 생일까지 잊어버리다니. 모든 일이 내 사랑의 농도가 옅어져 생긴 것만 같았다. 그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 같은 미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어서 빨리 책임을 전가할 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아니 K, 너는 어떻게 자기 생일인 것도 나한테 말을 안 해 줄 수가 있어? 너는 어떻게 나를 애인 생일을 사흘씩이나 잊어버린 여자로 만들 수가 있니?”


나로 하여금 K의 생일을 까먹게 한 K를 탓하고 나니 속이 아주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휘핑크림은 미처 빼지 못한 아이스 초코 한 잔을 마시는 느낌, 미처 다이어트 콜라로 바꾸지 못한 햄버거 세트를 흡입하는 느낌, 딱 그 정도의 죄책감만 남았다.


“생일 그게 뭐 중요하다고 말하고 다니냐. 늙어 가는 게 뭐가 좋다고.”


예전에 찾아본 K의 SNS에는 젊은 날의 그의 사진과 함께 생일 파티 사진 수 십장이 업로드돼 있었다. 커다란 케이크 앞에서 비쩍 마른 가녀린 몸매에 장발을 하고 고깔모자까지 쓴 K의 모습은 2010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업로드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K의 생일은 계속 존재했을 텐데도 그랬다.


더 많은 생일을 맞이하면 할수록 우리는 특별했던 날들에 무덤덤해진다. 너무나도 건조해져 이제는 지인의 생일 축하 문자가 진심인지 인사치레 인지 정도는 알림 소리만 듣고도 아는 경지에 오른다. 옛 애인의 '자니? 생일 축하해.' 같은 기분만 묘하게 더러운 문자는 확실히 씹어 넘기고, 적당히 알고 지낸 지인의 문자는 미처 못 보고 넘어간 냥 며칠 후에나 ‘어머 문자를 이제 봤네. 고마워~’하는 의미 없는 답을 건네는 의뭉스러움도 생겼다. 무심히 생일을 넘겨버린 겹겹의 세월만큼 뻔뻔함이 쌓였다. K 또한 그만큼 뻔뻔해져 애인이 제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아도 아무 타격이 없는 어른으로 늙어버렸다. 어른이 되어 보면 안다. 세상이 항상 공평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세상은 때론 배타적이고 절망적이라는 것도. 이 모든 걸 깨달은 어른은 그래서 메마르다. 그래서 어른의 생일은 그저 하나의 나날로 무심히 지나가기 마련이다.


K와 나는 벌써 한참 전에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세상 풍파에 마구 쓸린 마음은 생일 케이크 앞에서 이뤄지지 않을 소원을 빌고 또 빌던 어린 시절 아이 한 명을 여전히 안고 산다. K는 내가 잊어버린 그의 생일 자정, SNS에 ‘K는 밤새도록 노래 부르고 노래 부르네.’라는 짧은 글을 썼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K.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가사의 노래 아니었을까 한다. K도 40년 가까이 세상에 부딪히고 깨지는 와중에 그의 마음속 어린 K의 모습만큼은 오롯이 지키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맞이할 미지의 날 속에서 아직은 펼칠 수 없는 꿈같은 소원을 빌던 어린아이. 아무리 뻔뻔한 어른이 된 K라도 적어도 1년에 딱 한 번, 자기 생일만큼은 어린아이가 되고 싶었을 테다. 어른에게 생일은 그러려고 존재하는 것 같다. 364일을 어른으로 살아냈으니 딱 하루만큼은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맘껏 놀아보라고.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을 까맣게 까먹은 죄로 나는 SNS에서 퍼온 젊은 K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생일 선물로 애인이 그려준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며, 하루만큼은 그때 그 즐거웠던 생일 파티 속의 K가 되었으면 좋겠다. 단 하루만큼은 어른이란 겉옷을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기를 바랐다. 생일이 지나고 다시 어른이 되었을 때, 충만해진 행복으로 세상의 온갖 불우한 것들을 물리치며 살 수 있는 K가 되기를 소망했다. 앞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운 날을 종종 마주할 거라고,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K의 마음으로 작지만 찬 소원을 빌었기를.


P.S: 옛날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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