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리. 여기저기 말고. 여기.
어떤 라디오 오프닝 멘트에서
내게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오며,
만약 오지 않는다면 내게 오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들이라 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자리한 곳이
내게 필요한 자리일지 모른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곳엔
내게 필요한 것이 없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 자리가
내게 오지 않는 거겠지.
지금까지 내가 있었던 몇몇 자리는
누구도 탐내지 않았던 자리였다.
혹여나 그곳에 찾아온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를 떠났다.
다시 말해, 내가 견디지 못했던 자리는
그 누구도 견디지 못했다.
견디지 못하고 도망 왔던 나는
수없이 많은 밤을 자책하며 보냈다.
나약하다고, 인내심 없다고, 무모하다고.
하지만 더는 나를 도망자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내가 도망쳐 나온 그 자리는
모두가 도망 나온 자리니까.
모두가 해내지 못할 때
나라도 해낼 수 있다면
그것을 혁명이라 할 수 있겠다만.
허나 그 혁명이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나를 갉아먹으며 날 지켜내지 못하는 일이라면,
다른 이와 뜻을 같이 하는 것도 또 다른 혁명이다.
남의 자리를 부러워하는 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살아가다,
때가 되면 곁에 머물거나 스쳐 지나는 것 아닌가.
이제는 내가 지나온 자리에 대해
미련을 곱씹거나,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내 앞에 오지 않은 것들만 바라보다,
내 앞에 온 것들을 놓치지 않을 거다.
나에게 좀 더 신경을 쓰면서 살아봐야지.
내겐 내가 빛날 나만의 자리가 있으니까.
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