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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하고픈거 다해보기 중

사직서, 광고카피 원없이써보기, 플라워카페 취업

by oddmavin project

하고픈거 다해보기도 어느덧 4년째.


내 쓸모를
남이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내가 스스로 알아가고 만들어 가자

ㅣ하고픈거 다해보기 모토ㅣ


4년 전 11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시작한 하고픈거 다해보기 프로젝트. 다양한 상황에 나를 내던져 보면 진정으로 내가 잘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라는 생각에 시작했던 인생 프로젝트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발적이고 독립적으로 나답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버킷리스트를 해나가고 있다.



2024년

하고픈거

다해보기


1. 사직서 쓰고 나오기(통쾌!!)

2. 광고카피 원 없이 써보기

3. 카페에서 일해 보기

4. 꾸준히 꽃 배우기

5. 꽃집에서 일일 플로리스트 해보기

6. 플라워카페 취업하기



#1. [사직서 쓰고 나오기 (통쾌!!)]
1년 6개월을 버틴 기특한 실패


사직서를 쓰고 나온날 기록한 메모


살다 보면 뒤돌아 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이 있다. 미련도 후회도 번복도 없이 가슴과 머리가 하나가 되는 ‘고민은 끝났다’ 순간.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봤지만, 내가 더 이렇게까지 노력할 필요가 없는 회사구나.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감각이 누적됐을 때. 마침내 ‘이제 나의 갈길을 가자’다.


너무 아픈 곳에서
도망치는 것도 용기다
스스로 지키기로 결정한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야지


퇴근 시간. 짐을 싸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사직서를 2달 넘게 품고 다니다 마침내 내고야 말았다. 나의 최선이 ‘혼자 신났네’ 취급을 받으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던 곳. 나의 노력이 ‘안 해도 되는 일을 벌리네’ 같은 매도와 갈취로 폭력을 느끼게 했던 곳. 폭력집단으로부터 저항하는 방법은 그곳을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나의 신념대로 일을 했고 내 신념이 미움받는 곳에선 끝까지 미움받으며 떠나고 싶었다. 그래야 내 신념이 옳은 곳으로 향할 수 있지 않을까. 미움받는 편이 낫다.내가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지 악인에게까지 사랑받는다는 건 내가 그 악행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니. 1년 6개월의 회사생활. 2년 채우기는 실패했지만 비겁해지기보다 실패를 선택했다. 그래도 1년 버티기는 성공했으니 작은 성공을 이룬 내가 기특하다.


그냥 저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 같더라고요. 온전히 지지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의욕이 생기지 않는 그런 사람. 그래서 그만뒀는데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 뒤로 저의 스토리가 없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잘한 것 같아요.

-매거진 B발행인, 조수용-
(전 카카오 공동대표)

#2. [광고 카피 원 없이 써보기]
난생처음 TV광고 카피라이팅,
상세페이지 카피 50개 쓰기


운 좋게도. 1990년대 광고업계를 주름잡던 전설적인 카피라이터를 스승으로 만났다. 말이 거칠고 성격이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고문겸 프리랜서로 상주했던 스승 덕분에 비밀리에 난생처음 TV광고 카피를 써볼 기회를 얻었다. 내 직속 상사였던 마케팅 상무는 내가 스승과 일하는 걸 못마땅해했다. 프리랜서의 일을 직원에게 시킨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내게는 기회였다. 506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1분짜리 화장품 광고 카피였다. “김카피야 내 옆에 착 붙어있어” 불도저 같은 스승은 TV광고 촬영장에서 카피라이터가 해야 할 역할을 하나하나 알려줬다. 내가 쓴 카피로 광고가 만들어지는 걸 보니 뿌듯하면서 보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소파, 건강기능식품, 의료기기, 식품 등 다양한 브랜드의 카피라이팅을 하다 보니 1년 6개월간 50개에 달하는 상세페이지를 작업했다. 적은 예산과 짧은 일정으로 야근과 주말출근에 모델까지 나홀로 극한의 사투를 벌였다. 덕분에 일생일대 가장 많은 수의 상세페이지 카피를 써보고 브랜드 전체의 카피라이팅을 원 없이 해볼 수 있었다. 고생한 만큼 소중한 자산이 됐다.


스승님께 전수받은 주옥같은 가르침을 남겨 본다.

ㅣ좋은 카피를 쓰기 위한 9가지 철칙ㅣ

1) 광고 카피란 제품 판매, 이미지 제고가 목적. 이 두 가지를 반드시 염두!
2) 팩트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 고민!
3) 또 어떻게 정확하게 알릴 것인가!
4) 핵심은 베네핏(소비자 이익/변화점)!
5) 베네핏을 재미/과장되게 표현하라!
6) 베네핏으로 유행어를 만들어라!
ex)콜대원-쫘봔?
7) 미사여구를 줄여 가독성을 높여라!
8) 짧게! 후킹! 심어주기!
9) 하드보일드 문체 (건조한 문체)로 써라!
(하드보일드의 대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김훈의 글을 필사하면 좋다)



#3.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해보기]
3년 만에 우연히 찾아온 기회!

카페에서 일하며 내린 에스프레소


오전에는 카페. 오후에는 카피. 커피와 카피를 동시에 해보는 경험이 쌓였던 3개월이었다. 정직한 노동으로 녹초가 돼보는 것도 나름의 배움. 아르바이트생이 휴가를 가거나, 급한 일로 출근을 못했을 때 대신 일을 했는데 일생일대 제법 손꼽을 만큼 값지고 (희)귀한 경험이었다. 2021년,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며 꿈꿨던 일이 이런 기회로 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허투루 오는 우연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글을 쓰나 커피를 만드나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이치는 똑같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만들고, 컵을 씻고, 정리하느냐. 그럼에도 정신의 푯대가 나보다 고객에게 세워지지만 것도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을 했다. 커피 한 잔에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생의 감사와 숙연 함이었다. 머리와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내일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값진 경험이었다.



#4. [꾸준히 꽃배우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깨닫게 한 92시간


2024년 첫수업날 배운 꽃다발과 마지막 수업날 배운 꽃바구니


2024년 늦봄에 시작해 늦가을까지 꽃 수업을 들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어떤 내가 돼 있을까. 궁리를 하다 세 개의 계절을 흘려보내고 문득 내 세계는 한 뼘 더 넓어진 기분이 들었다.


꽃은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볼 기회를 준다. 세상에 흩어진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꽃이 “여기봐, 이런 세계도 있어” 하며 한 뼘 더 넓은 세계를 열어줬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 것인지 깨닫게 해 준 92시간. 이쪽저쪽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온전히 내 마음에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졌던 내가 하나의 다발로 합쳐지는 몰입의 기쁨이 헛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제한 짓지 말고 남이 나를 제한 짓게 두지 말고. 힘을 주고, 꿈을 지지하고, 사랑해 주면서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내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사람들 곁에서 하고 싶은 걸 해내며 살아가고 싶다. 주저하지 말자. 내가 더 활짝 피어나는 것에.



#5. [꾸까에서 일일 플로리스트 해보기]
난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어..


생애 첫 꽃일로 일일 플로리스트를 했다. 나의 쓸모가 없어진 것 같아 젖은 행주처럼 주눅 든 상태 일 때. 운 좋게 플로리스트 첫 여정을 꽃구독 서비스 업계 1위인 꾸까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감사했다.


시간이 순간 삭제 된 듯 해를 보지 못한 채 지하에서 꽃만 바라보던 하루였다. 일을 마치고 밖을 나와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오직 꽃에 집중하며, 새로운 세상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전에 살던 세상이 아니었다.


장자는 말했다. 내가 쓸모없다고 했을 때가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때라고. 사랑은 내가 쓸모없어졌을 때 입증이 된다. 내가 쓸모없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날 사랑하는 것이다. 강신주, 내가 쓸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하고 있고 가성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일은 좋아하는 일이라 했다. 꾸까에서 꽃일을 하며 사랑받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꽃에게 존재의 긍정을 받는 기분은 나를 꽃피우게 한다. 쩍쩍- 금 간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서 아무도 꺾을 수 없는 꽃 한 송이가 내 안에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아침 8시 시작, 하루 8시간 꽃일.
꽃과 함께 88한 여생을 그려본다.


#6. [인생 2챕터, 플라워카페 취업하기]
나이 마흔, 최저시급 파트타이머 시작!

출근 첫/둘째날 잡아본 꽃다발


자유롭게 살고 싶거든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을 멀리하라

-톨스토이


12월 30일부터 플라워카페에서 파트타이머로 출근​ 중이다. 4일 동안 하루 6시간씩 일하고 나니 걱정이 앞선다. 이 일을 잘해 나갈 수 있을까. 또 생각 한편에는 이만큼 정직한 노동이 있을까 싶어 사뭇 경건해진다.


생각해 보면.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 카페다. 같은 사람과 얽히고설켜 누가 맞네 누가 하네 마네 씨름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면 된다. 육체적인 피로도가 크지만 회사 같이 강압적이고 부조리한 지시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덜한 곳이다. 라인을 잘 타야 한다던지. 거짓된 방법으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억지스러운 협력을 얻어야 한다던지. 동의한 적 없는 권력에 굴복해야 하는 억울함도 없다. 순수한 노동. 이것 하나면 된다.


플라워 카페에서 판매하는 식물들. 식물의 지혜를 배우게 한다.


난 괴로웠다. 동료들과 서로 협력하여 정정당당하게 성과를 내고 혼신의 힘으로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닌. 하이에나처럼 비겁하게 애써 마련한 식량을 빼앗아가거나, 사투를 걸고 낳은 알을 갈취하는 독수리 같은 비열함이 날 고통스럽게 했다. 이런 불합리한 일들의 총합이 연봉에 포함된 금액이라면. 그것을 제외한 순수한 일에 대한 보상은 최저시급에 불과하다 느꼈다.


서울대학교병원 선생님께 꽃배달 중


플라워카페 일은 새하얀 백자처럼 맑고 정직하다. 고객에게 커피와 꽃을 내어주면 된다. 고객이 원하는 음료를 만들고, 꽃상품을 만든다. 수많은 종의 식물도 있어서 자연을 벗 삼아 생명을 돌보며 매장을 어여쁘게 관리한다. 꽃 주문이 들어오면 근처에 꽃 배달도 간다. 플라워 카페에서의 정직한 노동에는 진흙 같은 탁함이 없다. 비록 몸이 힘들고 일한 만큼 보상이 지난 직장보다 적지만 탁한 물이 아닌 맑은 샘물에서 맑은 내가 되고 싶다. 나이 마흔, 저질 체력에 실수투성이 초보지만 그럼에도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플라워카페에서 일해보기를 할 수 있는 데까지 후회 없이 해보련다.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다!

한번 사는 인생!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2025 버킷리스트도 요이땅!


플라워카페 출근길에 만나는 문장 “어둠을 지나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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