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그렇다면 월급 더 주셔야 할 거 같아요
모든 길은 돌아갈 곳이
없을 때 생긴다
플라워카페에서 2주째 일하고 있다.
올해 한국나이 마흔 살.
최저시급이지만 꽃집 경력이 없으니 것도 감지덕지다.
"무슨 일 했어요?"
"카피라이터라고 글 쓰는 일을 했어요"
변곡점을 지나 시들어가는 나이라지만 이대로 죽을 순 없지.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면접을 봤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우리 인스타그램도 하는데"
"네~ 사진 찍고 글 쓰는 거 좋아해요"
면접 때 사장은 카페와 꽃 일 외에 근처에 꽃배달도 가고 인스타그램 운영도 해야 한다 말했다. 원래 했던 일이라 더 잘됐구나 싶었다. 이 나이에 온 새로운 기회가 감사했다. 무엇보다 동네 작은 꽃집은 모든 일을 해볼 수 있어서 훗날 개인 플라워카페를 냈을 때 큰 배움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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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인수인계를 받았다. 카페와 꽃 관련 업무에 매장관리, 재고관리, 손님 응대, 배달, 인스타그램 운영. 추가적으로 면접 때 듣지 못한 블로그 운영까지 주 업무였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는 매일 한 개씩 콘텐츠를 올려야 했다.
사장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운영에 대해 말을 보탰다.
"글을 좀 더 길게 써줘. 지금 꺼 너무 짧아"
기존 직원이 쓰던 글이 마음에 안 든 뉘앙스였다.
"글을 길게 쓰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구성도 다시 짜야하고요"
"오래 걸려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해줘"
음... 잠시... 내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혼란이 왔다. 난 글이 아니라 플라워카페 경험을 쌓기 위해 온 건데. 그래도 그 일부니까 자만하지 말자 싶어 사장의 요구사항에 맞춰 성의를 다해 주어진 일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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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금 주 5일 매일 6시간 근무 일과는 이러했다.
오전 11시 50분에 출근해서 카페 물품을 채우고, 점심시간에 몰려드는 직장인들에게 커피를 만들어 서빙을 하고 폭풍 설거지를 한다. 근처에 꽃 주문이 있을 때는 걸어서 배달을 다녀온 뒤, 30분 정도 옆집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후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용 사진을 찍어 선별하고 글을 써서 올린다. 꽃 컨디셔닝을 하는 날에는 꽃 냉장고 청소를 한다. 꽃이 꽂혀있던 물통들을 세척하고 미끌거리는 줄기를 물에 씻어준 뒤 물러지거나 갈라진 줄기의 맨 아래 부분을 하나하나 잘라 꽃이 물을 잘 먹을 수 있게 해 준다. 시들거나 갈변된 꽃잎들까지 모두 제거한 꽃들은 새로 간 물통에 꽂아 꽃냉장고에 넣는다. 중간에 카페 손님이 오면 음료를 만들고 꽃 손님을 응대하다가 시간이 남으면 꽃다발을 만들고 마감 청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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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초보라 느린 것도 있지만. 2주간 사장이 요구하는 수준대로 일을 하다 보니 신선도가 생명인 꽃을 관리하는데 지장이 생겼다.
"사장님, 매일 긴 글로 블로그 올리는 일이 버겁습니다..."
"글을 쓰느라 정작 꽃컨디셔닝 하는데 지장도 가고요"
문제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였다. 매일 1시간가량을 할애했다. 퇴근하고도 내일은 어떤 내용으로 올려야 하나. 생각을 안 하려 해도 습관적으로 자기 전까지 고민했다. 기존 직원이 10분을 할애한 콘텐츠를 새롭게 구성 잡고 디테일하게 올렸더니 사장이 마음에 들어 했지만 내겐 스트레스였다. 융통성 있게 하려 해도 쉽지 않아 결국 사장한테 말해야 했다. 이 완벽한 주객전도의 상황을.
"바쁜 날에는 짧게 쓰고 아닌 날에는 길게 써"
흠. 요지는 그게 아닌데.
차마 포스팅 횟수를 줄여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더구나 플라워카페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내게는 과부하였다. 한때 전문 업체에 돈을 주고 블로그 운영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데 '바쁘지 않으면 짧게 써' 같은 '시간 때우기' 개념처럼 '이 정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뉘앙스로 말해 적잖이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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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가 과열된 듯 체력도 정신도 뜨겁게 방전됐다. 나약한 언사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몸을 쓰는 플라워카페 일과 머리를 써야 하는 글쓰기가 합해져 터지기 일보 직전의 한계에 다다랐다. 꽃집 경력이 없어 바닥에서부터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지만, 왠지 모르게 다른 것에 치중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장님 저,,, 전회사를 다니는 느낌이에요."
"면접 볼 때 블로그 글을 매일 써서 올려야 한단 말씀도 없으셨고요"
"글을 매일 써야 하는 거면 월급을 더 주셔야 할 거 같아요"
사장 입장에서는 직원에게 돈도 주고 일도 가르쳐주면서 이런저런 일을 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명확하게 내 입장을 피력해야 했다.
"자기야,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건 아니지"
사장은 본인이 꽃을 가르쳐 주듯, 나는 글 쓰는 걸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 아니냐며 혼을 냈다.
"다른 꽃집에서는 이렇게 일 안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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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배움의 태도가 잘못된 건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정중히 사과를 드렸다.
"글이 저한테는 10년 간의 밥벌이였고 예민한 영역이에요. 무엇보다 저는 꽃과 카페 일을 하고자 이곳에 왔지 글을 쓰기 위해 온 게 아니에요."
사장은 기존 직원들이 10분 만에 후다닥 글을 썼다며 비교했다.
"저도 하는데 까지는 해볼게요."
"그러면 블로그 글 쓰는 일은 주 2~3회 정도로 줄여서 해봐"
"부담 갖지 말고"
사장의 타협점이었다.
그일 후로.
일이 예전처럼 즐겁지 않다. 사람 마음에 가시가 생기면 눈에 가시 같은 순간들이 자꾸 밟힌다. 시시때때로 이전 직원들과 나를 서슴없이 비교하는 말에 따끔따끔 찔린다. 고슴도치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숨고 싶어 진다.
2주간 플라워카페에서 일하며 깨달은 건,,
사람이 살면서 억울한 순간이 있다면
신경 쓰면서 정성껏 성의를 다했음에도
그 모든 것이 대강대강, 대충대충,
쉽게 퉁쳐져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될 때다.
대강했으면 억울하지도 않다.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한 게 억울하고 허탈해진다.
신경 쓴 강도대로 마음의 쓰나미도 크게 온다.
왜 사람들이 좋은 직장 환경에서 좋은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는 상호 존중과 배려,
그리고 공정한 대우를 받고 싶어서였다.
명확해진다.
어떤 사람과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
일하면서 느낀 "싫다"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싫다'는 감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감정을
잘 인식하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임을 알게 됐다.
위를 올려다보지 않으면
밑에 뭐가 있는지
절대로 알지 못해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을
봄으로써만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돼
하늘을 만지기 전에는
땅에 발을 댈 수 없어
폴 오스터, 달의 궁전 22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