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같은 말을 여러 번 묻는 것이 싫다 이미 답을 했는데도 또다시 물어 오면 나의 말이 물거품으로 흩어진 듯 내가 없어진 듯 부정당한 기분이 든다
인간은 부정당한 기분이 들 때, 사라짐을 경험한다 나의 사라짐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피할 수 없는 생의 숙명 앞에서 욕심을 내는 걸까
이래서 사라짐의 기술이 생의 필살기인 것이다
엄마는 밥 먹을 때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물어보신다 밥 더 먹을래, 누룽지 먹을래, 청국장은 맛있니
맛있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 이건 부정이 아니라 모정이었다 모정을 부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정당할 용기와 사라짐의 기술을 익혀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