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미래는 없다
내가 선명하게 바라보면 되는 거였다
플라워카페 출근길. 회사를 관두고 이 일을 시작한 지도 4개월이 흘렀다. 마흔 살 새로운 도전. 잘하고 있는 걸까.
앞이 보이지 않고, 방향도 모르겠고, 나 홀로 멈춘 것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며 앞이 흐릿할 때면 원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좋아하는 풍경을 찾아보기도 한다. 불행한 시간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해주는구나. 멈춘 게 아니라 잠시 방향을 고르는 중이라는 걸 깨닫는다.
을지로 4가 역에서 내려 플라워카페까지 1km. 광장시장, 청계천을 지나 세계문화유산 종묘, 창경궁이 우직하게 자리한 거리를 매일 걷는다. 같은 거리에서 매번 다른 풍경들을 마주하는데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풍경이 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사과나무에서 조금씩 느리게 자라나는 새싹들이다. 겨우내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지 4월이 되니 마침내 눈앞에 새순이 피어났다.
가장 힘든 계절의 모습으로
나무를 판단해서는 안되며
꽃이 피게 되면 알게 되리라
-류시화-
모든 멀어지면 흐릿해진다. 너무 먼 곳을 보느라 눈앞의 선명함을 놓치고 살았던가. 한성부 동부관아터 표석을 지나다 조선시대 5백여 년간 서울 동쪽 지역의 주민 행정을 담당했던 터의 기운을 느끼며 자조해 본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내가 선명하게 보면 되는 거였구나. 선명하게 바라보면 선명한 행복들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꽃다발을 만들다 무의식적으로 쨍한 색의 봄꽃들만 골랐다. 선명한 색은, 선명한 마음을 부르는 걸까. 노란 나비가 날아 앉은 듯한 샛노란 버터플라이 라넌. 푸르른 미니 델피늄. 그 대비 속에 선명한 미래를 담는다.
노오란 봄볕과 파아란 하늘 사이에서 또렷한 행복이 피어나는 듯. 살아있어서 볼 수 있는 선명한 순간들이 내가 걷는 길과 흐르는 시간 속 바로 눈앞에 있다. 낡아버린 후회들과 간사한 욕심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봄햇살 같은 선명한 행복을 한 다발 묶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