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였다.
장작 같은 사람을 잃은 뒤,
번개탄 같은 헛것으로
공허를 채우려 한 것이.
이제는 그의 어떤 행동도 '텅 빈 사람'으로 읽힌다. 이번에는 또 어떤 텅.빈.행.동.으로 피해를 주려나. 생각만 해도 심장이 쪼그라든다. 텅 빈 필터를 거쳐 해석된 그는 ‘텅‘ 자체가 되어버린다.
빈 머리와 가슴으로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 걸 듣고 있으면 나도 같이 몽매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내 진심이 통할리 없는 텅에게 나를 내맡기고, 허울뿐인 소리를 들으면 공허한 마음은 더 크게 텅~텅~ 공명한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연락을 끊었던 ‘텅’에게 다시 손을 내민 건 실수였다. “그동안 내가 텅을 오해했던 거야.” 이 생각이 실수의 시발점이었다. 죽마고우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생의 허무함과 그리움 속에서 허덕이던 날을 보내고 있을 때. 스쳐간 인연들에 한 톨의 아픔도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오만을 품었다. 몹쓸 생각, 못다 한 말, 비겁한 이면을 마주하고 나니 성인군자 같은 모습으로 해소하고 싶었던 게다.
그게 실수였다.
장작 같은 사람을 잃은 뒤,
번개탄 같은 헛것으로 공허를 채우려 한 것이.
다시 만난 텅은 변함없는 텅이었다. 감사하게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더 공고히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배운 점이 있다면 나를 의심하지 말자는 것. 처음 갖는 생각과 느낌과 직관을 늘 의심부터 하고 봤는데 이제는 스스로를 믿어보기로 한다. 뭐든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맞을 수도 있는 거니까.
*
이젠. 내 삶의 방향키를 온 힘 다해 돌릴 때다.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빈 껍데기 같은 삶을 더는 묵인하고 싶지 않다. 전 생애를 걸고서라도 스스로를 믿고 맞닥뜨린 현실을 탐구하며 살아가고 싶다. 아니 아니.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라 해도.
실수가 좋다.
실수하는 내가 좋다.
실수를 통해 스스로를 더 믿게 되니 좋구나 좋아!
얼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지속되는 삶의 궤도 위에서 온 힘을 다해 커브를 도는 일은 누구에게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커브를 결심한 모든 이에게, 잠시라도 힘이 되었길 바란다.
1992년 여름 양귀자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글이 아니다. 관계에서 느낀 환멸과 자기반성, 성찰을 담고자 했다. 어떤 마음으로 다시 삶을 마주하려 했는지 기록해두고 싶을 뿐이다.